[H2]히로,휘지않는슬라이더!!

입력 2008-06-02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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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좌완 투수가 포스트 시즌에 선발 등판한다. 가을의 마운드가 주는 무게는 투수를 짓누르고, 질려버리게 만든다. 투수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리고, 7년 후 투수는 홈런을 날리며 타자로 변신에 성공한다. 11번 자살을 시도한 마약중독자가 할머니의 눈물을 본다. 절치부심한 자는 메이저리그를 폭격하며 최고의 타점머신으로 우뚝 선다. 최근 야구판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쯤 되면 만화란 장르를 굳이 리얼리티 운운하면서 비웃을 수 없게 된다. 야구를 소재로 한 국내 만화로 대표작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있다. 치밀한 구성과 폭발적인 힘이 있는 작품이지만, 주인공이 장님이 된다거나 여주인공이 정신병자가 된다는 설정은 80년대에나 먹히지, 요새 코드는 확실히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뜨겁고 극단적이고 전투적이다. 야구장 가기를 거부하는 여자친구를 야구에 입문시키고 싶다면, 아다치 미츠루의 명작 H2를 추천한다.
○H2의 살아 있는 캐릭터 H2의 주인공은 친구사이인 히로와 히데오다. 라이벌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스토리의 큰 축을 형성한다. 히데오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정직한 엘리트로, 히로는 여자를 밝히고 장난기 많은 어리숙한 녀석으로 등장한다. 장래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히데오와 사회인 야구 에이스여도 상관없다는 히로의 차이점이다. 요미우리적인 히데오와 한신적인(?) 히로의 차이점이랄 수도 있겠다. 두 인물의 특징은 히로의 타격을 말하는 히데오의 대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성적은 내가 나았지만, 9회에는…… 당신이 히로를 응원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요” 라는 강요된 분석을 들으며 자라왔을 테니까 말이다. 이외에도 H2에는 생생한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안경낀 뚱뚱한 포수 노다, 천재라 우겨대는 노력파 키네등의 캐릭터는 다른 무수한 창작물에서 변주된다. ○H2는 순정만화다. H2에는 본능적으로 어장관리를 체득한 여주인공도 등장한다. 히까리의 연애세포는 경험 이전의 천부적인 그것이다. 히데오의 여자친구인 그녀는 히로와의 사이에서 현란한 밀고당기기로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촉촉한 눈망울로 히로의 게임을 보면 이겨도 져도 울고 싶다 말하는 히까리의 멘트는 여고생 수준을 넘었다. 타고난 여우임에 분명하다. 여기에 히로 만을 바라보는 순정적인 하루까가 등장하는데, 히까리와는 대조를 이룬다. 하루까의 꿈이 스투어디스이고 히까리의 꿈이 신문기자인 것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아다치의 만화중 유명한 것은 터치도 있는데, 비슷한 삼각관계에서 H2는 히데오의 손을 들어 준 반면 터치에서는 히로의 투명인 타츠야의 손을 들어준 것은 흥미롭다. ○H2 찐덕거리지 않는다. H2는 화법이 세련된 작품이다. 같은 메시지를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과 하늘을 비추는 단 한 컷으로 담아내는 것은 수준 차가 존재한다. 아다치의 만화는 순간의 여백, 나무 한 그루, 단순한 캐치볼, 짧은 대사로도 오묘한 심리와 여운을 담아낸다. 그래서,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되있고 담백하다. 그 점에서 밋밋한 그림체와 오랜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쿨해지고 진화된 현대 감각과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루끼는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읽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말했다. 꽤 많은 분들은 H2를 재미없게 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다 말할 것이다. H2는 연인이 있는 분들에게 당신만의 하루까를, 혼자 계신 분들에게 그 옛날 당신만의 히까리를,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에 서계신 분들에게 당신만의 고시엔을 떠올리게 하는 만화다. 시절이 복잡하고 수상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이 한가롭게 만화책을 권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H2의 명대사로 이 글을 마무리 해야할 것 같다. 힘내 지지마 히까리 ☞ mlbpark 객원 칼럼니스트 [ 다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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