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유로 2008 정상에 서는 순간, 대다수 전문가들은 “우승할 팀이 우승했다”고 반응했다. 그만큼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기술이나 조직력 면에서 가장 각광 받은 팀이다.
‘무적함대’라는 별칭에 어울리지 않게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죽을 쒔던 스페인은 대회 결승전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의 결승골에 힘입어 독일에 1-0으로 승리, 1964년 이후 44년 만에 앙리들로네컵을 들어올렸다. 스페인은 우승 상금 750만 유로(124억 원)를 챙겼고, 다비드 비야(스페인)는 4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무관의 제왕’ 오명을 벗기까지
세계 최고의 리그(프리메라리가)와 명문 구단(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리고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한 스페인은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늘 우승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정상의 길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964년 자국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이 유일하다. 월드컵에서는 4강에 단 한번(1950년 월드컵) 올랐고, 이후 5차례나 8강에 머물렀다. 그래서 ‘무적함대’는 언제나 ‘무관의 제왕’이라는 오명을 함께해야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달랐다. 조별 예선에서는 한수 위의 기량으로 가볍게 8강에 올랐고, 2006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와 마법을 부린 히딩크의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하며 순항을 거듭했다.
○완성된 기술축구의 힘
스페인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스페인은 빠른 패싱 축구를 완성하려는 노력 덕분에 멋지게 우승했다”면서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스페인 축구는 향후 세계 축구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나키 사에스 전 스페인 대표팀 감독은 “스페인은 콤비 플레이와 원터치 패스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공격 스타일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동료와의 완벽한 호흡을 맞추는 2대1 패스,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절묘한 스루 패스, 상대 타이밍을 빼앗는 한 박자 빠른 패스 등 모든 패스의 전형을 보여줬다. 미드필드에서 볼을 잡으면 누구든 최전방에서 공간을 확보했고, 그 공간으로 볼은 어김없이 들어간다.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이런 공격 패턴에 상대는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스페인 축구는 이런 탁월한 기술축구와 완급을 조절하는 경기운영 능력, 그리고 환상적인 팀워크를 갖췄기에 우승 자격이 충분했다.
○상황에 맞는 전술변화의 승리
스페인은 표면상으로 4-1-4-1 시스템이지만, 자기 구역만을 고집하는 그런 전술은 아니었다. 포지션 보다는 모든 선수가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신경 썼다. 세냐, 이니에스타, 실바, 파브레가스 등 최소 7-8명이 미드필드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상대의 허점을 찾았고, 공간이 생기면 누구든 최전방으로 달려가는 그런 전술이었다. 공격과 수비를 따로 두지 않다보니 상대는 마크하기 어려웠고, 자유로운 포지션은 창조성과 유기적인 플레이를 가능케했다. 결국 상황에 맞는 전술 변화, 이것이 곧 스페인 축구의 색깔이었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