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고의 스포츠 경연장이자 축제. 2008베이징올림픽은 세계가 손을 잡고 연출한, 인간사와 삶을 뚜렷하게 투영하고 관통한 17일 간의 장대한 대하드라마였다. 드라마에는 ‘옥’이 있고 ‘티’가 있다. 정사(正史)는 ‘옥’을 기록하지만, ‘티’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다. 올림픽사상 가장 화려하고 웅대했던 개막식과 CG로 만들어진 장대한 ‘거인의 발자국’에 가려졌던 베이징올림픽의 뒷이야기들. 이번 올림픽의 부록편이자 해프닝 등의 야사(野史)를 모았다.
○ 베이징 올림픽은 짝퉁 올림픽
‘짝퉁대국’이란 오명을 씻지 못해 온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짝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짝퉁시비는 올림픽사상 최고였다는 8일 개막식에서부터 불거졌다.
전 세계 시청자들을 감쪽같이 속인 CG 발자국 폭죽과 함께 ‘가창조국’을 부른 천사 같은 여자아이 린먀오커의 립싱크 사건이 터진 것.
중국은 이 사건에 대해 “노래를 부른 양페이의 이빨이 못 생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모든 것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 해명했으나 세계 언론과 네티즌들은 ‘어린이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분노의 화살을 날렸다.
올림픽주제가 ‘유앤미’도 표절시비에 올랐다.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는 가짜티켓이 판을 쳐 피해자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뒷이야기 : ‘짝퉁물의’에 대한 중국의 해명은 오히려 세계인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짝퉁 자체도 문제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중화우월주의, 그리고 ‘정말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중국의 무감각함과 뻔뻔함을 지적했다.
○ 베이징 올림픽은 누드 올림픽
베이징올림픽이 스포츠스타들의 누드로 후끈 달아올랐다.
수영스타 아만다 비어드(미국)가 모피 반대운동을 펼치며 자신의 누드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독일대표팀의 미녀선수 4명이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 독일판 모델로 등장했다. 영국대표 필립 이도우(육상 세단뛰기), 그레고르 타이트(수영), 레베카 로메로(사이클)도 스포츠음료 광고에서 섹시하고 강렬한 누드사진을 선보여 ‘누드리스트’에 합류했다. 41세의 ‘아줌마 수영스타’ 다라 토레스(미국)는 남성잡지 맥심에서 매끈한 몸매를 과시했고, 호수 수영선수 스테파니 라이스는 전 남자친구와 함께 나란히 속옷광고를 촬영했다.
파라과이의 창던지기 선수 레린 프랑코는 ‘나를 더욱 잘 알리기 위해’ 섹시한 자신의 사진이 담긴 달력을 공개했다.
뒷이야기 : 누드스타들 중 독일의 니콜 라인하트는 카누 카약 4인승 5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최근 성인잡지에 속옷차림으로 나섰던 네덜란드의 엘렌 후그도 여자하키 결승에서 두 골을 넣으며 자국 우승의 주역이 됐다. 누드만 보지 말고, 실력도 봐 달란 말이야!
○ 남의 요트타고 우승, 어찌 하오리까?
17일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칭다오 올림픽세일링센터에서 벌어진 요트 49er급 경기에서 덴마크의 요나스 바레르-마틴 입센 조가 1위를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경기 직전 강풍에 돛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이들은 자신의 요트가 아닌 크로아티아 팀의 요트를 빌려 타고 경기에 나섰던 것. 경기를 포기하려던 두 사람은 빌린 요트를 타고 경기 시작 5분전에 출발선에 섰다.
뒷이야기 : 국제요트연맹은 마라톤회의 끝에 이튿날인 18일 이들의 우승을 공인했다.
○ 뉴질랜드팀 자전거 48시간 증발사건
15일 선수촌 뉴질랜드 대표팀의 자전거가 대거 사라지는 황당사건이 발생했다. 뉴질랜드팀은 선수촌에서의 이동을 위해 10대의 산악자전거를 들여왔으나 이 중 8대를 감쪽같이 도난당한 것. 팀 대표 데이브 커리가 ‘셜록 홈즈’가 되어 수사에 나섰다.
뒷이야기 : 48시간 뒤 자전거는 제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커리는 “우정을 위해 누가 저지른 일인지 찾지 않겠다”는 묘한 말을 남겼다.
○ 브라질 선수 장대 감쪽같이 사라져
18일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결승에 진출한 파비아나 뮤러레(27·브라질)의 장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조직위와 브라질팀이 20여분 넘게 경기장 곳곳을 헤맸지만 장대는 발견되지 않았고, 예비용 장대를 들고 경기에 나선 뮤러레는 자신의 기록에도 한참 못 미친 4m65조차 넘지 못했다.
뒷이야기 : 장대는 뒤늦게 선수들의 장비를 보관하는 라커에서 발견됐다. 뮤러레는 “주최측이 내게서 올림픽을 앗아갔다. 다시는 중국에 오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 “8월8일은 길일” 중국 30만쌍 결혼
중국 언론들은 개막식이 열린 8일, 중국 전역에서 30만쌍 이상의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들어선 1949년 이래 최대의 수치이다. 중국에서 8은 부와 행운을 상징한다.
뒷이야기 : 출산 역시 마찬가지. 8일에는 전국적으로 수천 명 이상의 올림픽둥이가 세상에 나왔다. 자녀 이름을 올림픽을 뜻하는 ‘아오윈’으로 짓는 것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 테니스 여자복식 8강전 1박2일 경기
테니스경기가 새벽까지 이어지며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15일 여자복식 8강전 정제-옌쯔(중국)와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디나라 사피아(러시아)의 경기는 그 중 최악. 중국이 마지막 3세트에서 10-8로 이긴 이 경기는 16일 새벽 3시 35분에 종료됐다. 무박2일의 경기였던 셈이다.
뒷이야기 : 주최측은 경기가 늦게 끝난 이유에 대해 일정 가운데 초반 이틀간 비로 경기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밝혔지만 네티즌들은 ‘올빼미 테니스경기’라며 입을 내밀었다.
○ 대통령·배우·기수 ‘거꾸로 국기’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사진)과 이명박 대통령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거꾸로 들고 자국팀을 응원해 물의를 빚은 가운데 영화배우 장쯔이, 심지어 개막식에서 중국선수단을 이끈 어린이 기수조차 거꾸로 된 국기를 들어 곤욕을 치렀다.
뒷이야기 : 상하이 폭정망에 따르면 ‘거꾸로 된 국기’는 강제수용소인 노동교양소의 수감자들이 교도소측의 전횡에 항의하는 뜻으로 일부러 ‘짝퉁국기’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 러-그루지야 전쟁 잊고 시상대 포옹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두 나라의 여자사격선수가 시상대에서 보여준 포용과 화합의 올림픽정신이 감동을 안겼다. 여자10m공기권총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러시아의 나탈리아 파데리나(왼쪽)와 그루지야의 니노 사루크바체는 시상식대에서 포옹과 가벼운 키스를 나누며 ‘스포츠정신’을 설파했다.
뒷이야기 : 그루지야의 사루크바체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구 소련 소속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이번 동메달은 그녀가 조국 그루지야에 바친 첫 메달이었다.
○ 中 여성 도우미 누드 테스트
개막식에서 각국 선수단의 퍼레이드를 이끈 200여명의 중국여성들이 선발과정에서 ‘누드테스트’를 받아야했던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일으켰다. 응모자들은 모두 방에 들어가 옷을 벗은 상태로 시험관으로부터 몸매 측정을 받아야 했다.
뒷이야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천 명의 베이징의 대학생들과 댄스학원 수강생들이 이 테스트에 응모했다. 이들 중 ‘키 166cm 이상, 미모, 젊은 에너지가 충만한’ 여성들이 도우미로 선발됐다.
○ 인해전술로 모래밭서 반지 찾기
10일 비치발리볼 미국대표 케리 월시(30)가 결혼반지를 모래판 위에서 잃어버렸으나 대회 조직위가 금속탐지기를 동원해 경기장 구석구석을 찾아 반지를 되찾아 주는 ‘미담’이 발생했다. 1만7000여 톤의 모래밭을 자원봉사자들이 ‘인해전술’로 이룬 쾌거였다.
뒷이야기 : 결혼반지를 낀 월시는 12일 쿠바팀을 꺾고 103연승을 기록하는 한편 21일에는 결승에서 중국을 2-0으로 완파하고 우승해 ‘보은(?)’했다.
○ 전경기 매진? 알고보니 짝퉁 관중!
사상 초유의 ‘전 경기 전석 매진’을 자랑했던 중국은 막상 경기장 관중석이 텅 비자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싸매야했다. 급기야 IOC로부터 ‘경고’까지 받게 되자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짝퉁관중’을 만들어냈다.
뒷이야기 : 사전에 DVD로 응원교육을 시키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중국응원단의 ‘찌아요’ 응원은 세계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차이나데일리는 ‘중국응원단은 한국의 조직적이고 다채로운 응원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