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가간다]성남축구단길거리홍보동행

입력 2009-04-07 20: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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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탈’쓰고3시간진땀“말(馬)살리자∼”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과연 어떻게, 대체 어떤 방식으로 프로 축구단은 관중들에게 자신들의 경기를 알리며 어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다수 축구 팬들은 기사화된 정보나 기타 커뮤니티를 활용해 사전 지식을 익히고, 응원하는 팀 별 일정을 확인한다. 하지만 각 구단들도 그간 쌓아온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을 터. 대표적인 예로 ‘길거리 홍보’가 있다. K리그 통산 7회 우승에 빛나는 성남 일화도 이 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 한 번 경험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나올 법한 질문을 미리 꼽자면 ‘왜 하필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어온 성남을 택했느냐’는 것.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성남이기 때문’이다. 그간 아쉬움이 많았기에, 부정적 시선이 짙었기에 그들의 노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물론,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알고픈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올 시즌 K리그 개막전이 끝난 직후, 성남 구단의 상징인 ‘천마’탈(실제로는 백마였다)을 뒤집어쓰고, 성남 시내 곳곳을 돌며 홈 개막전 홍보를 직접 해봤다. 말 많고, 탈 많던(?) 3시간 여 체험을 공개한다. ○치열한 준비 과정…밤샘 작업은 기본 “저희에게 좋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죠. 뭐, 솔직히 맞는 말이에요. 저희 경기장 관중석이 만원인 기억이 저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팀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길거리 홍보요?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햇수로 벌써 3년째에요.” 김진택 성남 홍보/마케팅 차장은 적은 관중수를 언급하자 인정하는 한편, 짐짓 서운한 눈치였다. 성남은 2008시즌 정규리그 총 관중수가 10만6024명에 그쳤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고작 7573명. 한 경기 평균 관중수가 1만 명이 채 안되는 구단은 총 관중 9만6377명에 그쳐 경기당 평균 관중 7414명에 머문 제주와 성남이 유이하다. 수많은 트로피를 손에 넣고도 ‘명문까지 2% 부족하다’는 달갑잖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성남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사무국을 개편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작년 말, 신태용 신임 감독이 부임하며 선수단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된 것처럼 프런트도 일부 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선수 지원팀과 함께 한 부서처럼 묶여있던 홍보/마케팅 부서의 전문 인력을 채용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각 부서가 전문 파트화돼 독립적으로 분리된 것은 물론이다. 여느 구단이 그런 것처럼 이들 목표는 오직 한 가지다. 할 수 있는 모든,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최대한 많은 관중들을 끌어모으는 것.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특히, 많은 수고가 필요한 게 바로 ‘길거리 홍보’였다. 김 차장의 설명처럼 성남은 올해로 3년째 이러한 홍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방법이 다소 바뀌었다. 당초 컨셉은 ‘1인 돌발 시위’ 형태였으나 특정 지역 이외의 곳은 커버할 수 없다는 한계에 따라 ‘게릴라’ 형태는 유지하되, 시내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기로 했다. 그러나 발품을 많이 팔아야하고, 최소 시간에 많은 곳을 이동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준비물을 만드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 물품들을 직원들이 90% 이상 수작업을 한다. 올 시즌 첫 ‘길거리 홍보’를 위해 직원들이 밤샘 작업을 했단다. 물론, 손재주없는 남정네들의 작품이라 볼품은 없었으나 ‘태용아, 사랑해’ ‘He's Back 신태용’ ‘태용이는 누구?’ 등 꽤나 재미있는 플래카드들이 눈길을 모은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흰색 ‘천마 탈’을 건네던 김현일 사원이 한 마디 주의사항을 던진다. “어차피 다른 분들은 탈 쓴 사람의 얼굴과 눈을 볼 수 없잖아요.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창피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아요.” 간단하지만 꼭 필요한 주의사항이다. 성남의 노란 레플리카와 머플러를 착용하면 준비 끝. 이젠 두 눈을 모아 말 탈의 입에 뚫린 구멍으로 내다보고,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힘찬 두 발만 있으면 된다. ○“꺅∼말대가리다!” 여고생들의 응원에 힘 ‘불끈’ 임지오 홍보 과장의 인솔 하에 김진택 차장, 김정호 대리, 김현일 사원 등 4명의 ‘거리 홍보’ 일행이 출발했다. 울산 현대와의 개막전이 치러질 모란역 인근 성남 종합운동장으로 이동해 마지막 복장 점검을 한 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이날은 모란시장의 5일장이 서는 날. 재래 시장이 거의 없어진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자주 눈에 띈다. 대부분이 일행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 에 흥미를 보인다. “우리 태용이가 이번에는 감독으로 돌아왔다네. 여봐, 한 번 축구장 가볼까?” 나이 지긋한 한 상인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에서 힘이 샘솟았다. 괜히 반가워 초대권이라도 주고 싶다. 허나 어쩌랴. 내겐 그만한 여유도, 권한도 없다. “수고하쇼! 내 꼭 갈테니.” 아저씨의 배웅을 받으며 지하철 역 부근으로 움직였다. 학원에서 나오던 저학년 초등학생들과 딱 마주쳤다. “우와, 말 아저씨다.” 털이 수북한 목덜미를 쓰다듬고, 꼬집고 난리도 아니다. 괜히 한 번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당한 봉변이다. 입을 열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건 만 “티켓 사서 꼭 아빠 엄마 손잡고 경기장에 찾아와야 해”라고 말하고 말았다. 돌아온 대답. “어, 말도 말할 줄 아네.” 피식 웃음이 터진다. 그래도 꼭 오겠다는 기약없는 약속에 흐뭇해지는 것은 왜였을까. 횡단보도 부근을 잠깐 걷고 있노라니 유모차에 예쁜 아기를 태운 젊은 엄마가 보인다. 멀리서부터 우리 일행을 지켜본 그 아기가 흥미를 보인 것 같아 다가갔건만 막상 가까이 가 머리를 들이미니 자지러지는 울음을 터뜨린다. 민망하고 머쓱해진 순간. “괜찮아. 무섭지 않은 아저씨들이야.” 보채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에게 괜시리 미안해진다. 잠깐의 휴식시간.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건만 말 탈을 벗고나니 땀이 줄줄 흐른다. 오늘은 시원할 줄 알았는데. 한쪽 골목에서 쪼그려 피우는 담배 맛도 너무 좋다. 꼭 군대에 있을 때 작업하다 한 대 빼어물었던 그 추억의 느낌처럼 이 느낌, 보통이 아니다. 마치 불량학생들을 보는 듯 인상을 잔뜩 찌 푸린 행인의 심상찮은 눈초리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마지막으로 이동한 장소는 성남 성일여고. 이번 체험의 하이라이트였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가운데 야간 자율학습을 앞둔 학생들의 부지런한 발걸음이 곳곳에 이어졌다. 저녁 식사를 위해 교문이 잠깐 개방된 시간이란다. 쾌활한 여고생들이 역시 기대한대로 쓸만한 ‘그림’ 몇 장을 만들어준다. 어깨동무를 하고, 팔장을 끼고 난리도 아니다. 아주 좋아. 동행한 사진기자를 향해 서슴없이 “아저씨, 말 탈을 쓴 저 사람하고 저랑 단 둘이 찍어주시면 안돼요?” “이거, 오늘 찍으면 언제 신문에 실려요?” “말 대가리 저도 한 번 써보면 안될까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공세에 시달리다 맡은 임무를 채 수행하지 못할 뻔 했다. “저기요. 학생 여러분, 그날 경기장 오실 수 있죠?” “아, 그날이요? 제가 지금 고3인데요. 어쩔까요? 그리고 또 화이트 데이잖아요. 남자친구하고 같이 올까요?” 미처 생각지 못한 방해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 때문일까. 다행히 성남의 시즌 첫 홈 경기엔 평소보다 많은 1만6144명의 관중들이 스탠드를 메웠다. 이 뿌듯한 느낌, 다 이유가 있었다. 성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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