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삼성포수현재윤“선동열과의만남은인생의전환점”

입력 2009-06-18 09: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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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포수 현재윤

‘포수는 체격이 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프로야구 사상 최단신 포수, ‘포수는 발이 느리다’는 통념을 뒤엎은 역대 가장 발이 빠른 포수. 그는 항상 분주하다. 플레이에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친다. 안방에 쭈그리고 앉아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면 외국인타자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파울타구를 잡기 위해 덕아웃 난간에 몸을 날리고, 홈을 파고드는 거구의 주자와 거침없이 충돌한다. 마스크를 벗으면 서른한 살의 나이답지 않은 동안(童顔). 보는 이들에게 박진감과 유쾌함을 선사하는 삼성 안방마님 현재윤 얘기다. 2002년 프로 입단 후 7년간 백업포수로 음지에 묻혀 있던 그가 올 시즌 비로소 제 세상을 만났다. 터줏대감 진갑용과 함께 삼성 안방을 분할하며 그라운드를 지휘하고 있다.

○이름 대신 “꼬마”로 불렸던 사나이

2002년 삼성에 입단했을 때, 체격 좋은 선수를 유독 선호하는 김응룡 감독(현 삼성 사장)에게 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프로필에는 키가 174cm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171cm. “국가대표 포수”라는 평가에 첫해부터 1군 엔트리에 올랐지만 김 감독은 이름 대신 “꼬마”로 부르며 잔심부름만 시켰다. 2002년 20경기, 2003년 34경기 출장. “신일고 시절 1번타자를 맡았을 정도로 발이 빠르다”는 정보를 듣고 김 감독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대주자로 한번씩 기용할 뿐이었다.

그를 처음 보는 이들은 “포수 체격이 왜 저 모양이냐”고 혀부터 찬다. 그러나 그의 민첩한 몸놀림과 영리한 머리를 보고는 평가가 달라지곤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체격이 무척 작았고, 그 작은 체격으로도 서울 인헌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21년째 포수를 보고 있다.

인헌초 창단 첫 우승의 주역이 됐고, 신일중·고 시절엔 동기생 안치용, 1년 후배 봉중근 김광삼 한상훈과 함께 전국무대를 휩쓸었다. 신일고 3학년 때인 97년 청룡기·봉황기·황금사자기 3관왕에 올랐고, 포수 겸 1·2번타자를 맡았던 그는 청룡기 서울예선 MVP, 황금사자기 수훈상과 타격상을 거머쥐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안치용 최희섭 이현곤 봉중근 등과 청소년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성균관대에서도 역시 국가대표를 지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선동열과의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

남들은 그의 작은 체격부터 주목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장점을 눈여겨봤다. 수석코치 시절인 2004년 5월 팀이 1무 포함, 10연패에 빠졌을 때, 누구도 말을 붙이기 힘든 김응룡 감독에게 현재윤의 기용을 적극 추천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10승1무1패로 반전에 성공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선 감독은 “과거 장채근처럼 체격이 큰 포수가 안방에 앉으면 어디로 던져도 다 받아줄 것 같아 투수의 마음이 편하다. 현재윤 같이 작은 포수가 앉으면 오히려 투수들의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다. 컨트롤 없는 투수에게는 현재윤이 나을 수 있다. 체력이 약한 것이 흠이지만 몸놀림이 빨라 블로킹도 잘 한다. 저렇게 발빠른 포수는 처음 봤다. 발이 너무 빨라 파울플라이를 지나치기도 할 정도니까”라며 껄껄 웃는다.

현재윤은 그런 감독이 고맙다. “감독님은 수석코치 시절부터 방에 불러서 용돈도 주시고 각별히 신경을 써주셨어요. 올해 전지훈련 때 저에게 갑자기 방망이를 선물해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가끔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실 때 힘이 되곤 하죠.”

○진갑용보다 많은 선발출장의 기회

그로서는 2002년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올해가 사실상 첫 풀타임 시즌이다. 16일까지 삼성이 치른 62경기 중 53경기에 출장했고, 절반이 넘는 33경기에 선발 마스크를 썼다. 그가 선발로 안방에 앉은 날 팀은 17승16패로 5할 이상의 승률을 보이고 있다.

4월 한때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깜짝 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했지만 체력이 약한 탓에 현재 타율이 0.252로 떨어졌다.

그러나 도루저지율(0.373)은 SK 박경완과 진갑용(0.333)보다 높다. 선 감독은 컨트롤이 미숙한 크루세타 등이 선발등판할 때 블로킹 능력이 앞서고 부지런한 그를 안방에 앉히고 있다.

○하얀 미소 속에 감춰진 눈물

현재윤은 항상 유쾌하다. 얼굴은 해맑고, 장난기가 가득하다. 심지어 다가서기 어려운 감독과 코치에게 장난을 치기도 한다. 선 감독은 “감독에게 농담 거는 놈은 처음 본다”며 귀여워하고, 한대화 수석코치는 “저놈 때문에 내가 못 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그가 살아온 과정은 굴곡이 심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하면서 집까지 잃었고, 집안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어머니는 홀로 그와 한 살 위의 누나를 힘겹게 키웠다.

2004년 비로소 자리를 잡는가 했으나 9월 병역비리에 연루됐다.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공익근무를 마친 뒤 지난해 의욕이 넘쳤지만 시범경기에서 쇄골이 부러지는 바람에 입원과 재활훈련으로 전반기를 소비했다. 입단 후 흘러버린 7년의 세월. 그는 어머니와 누나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공익근무 때 휴가를 갔어요. 밤에 신음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엄마가 화장실을 가려다 주저앉아 계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엄마 손과 발을 자세히 봤어요. 마치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퉁퉁 부어있더라고요. 뼈는 변형돼 있고. 오래 전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에 시달렸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하루 10시간 이상 갈빗집 돌솥밥 그릇을 나르면서 얻은 병이었죠.” 어머니를 말하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된대요. 저희 남매 키운다고 식당일, 옷가게 종업원, 파출부 안 해본 일이 없는 엄마인데. 저는 어릴 때부터 많이 까불고 사고도 많이 쳤어요. 야구를 잘해 연봉도 많이 받고, 저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엄마 호강도 시켜드리고 싶어요. 돈 버느라고 아직 시집도 못 간 누나 시집도 보내주고 싶고….”

○그라운드에 혼을 던지는 이유

그는 그라운드에 나서면 누구보다 열심이다. 대패를 당하는 게임에서조차 파울플라이 하나를 잡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에 팬들은 감동을 받고 있다.

“선수생명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잖아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공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가 없어요. 지금 받는 공 하나가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 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0-0으로 지고 있어도, 20-0으로 지고 있어도 공 하나에 목숨을 걸고 싶어요.”

입단 후 진갑용이라는 큰산에 가로막혔고, 기회가 올 때마다 불행은 되풀이됐다. 한때는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에 이불속에서 베갯잇이 젖을 정도로 울어도 봤지만, 그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야구였다.

그를 보노라면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야구는 그에게 생존의 이유이며, 생활의 밑천. 그래서 그라운드에서 불같이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는지 모른다. 그는 야구공 만큼이나 하얀 미소를 머금은 채 오늘도 무거운 포수 장비를 몸에 걸친다.

대구|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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