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들이부적붙이고女속옷노린이유

입력 2009-09-21 15: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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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긴 안돼. SK 주유소로 가.”

13일 프로축구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위해 제주공항에 도착한 포항 스틸러스의 구단 관계자들은 선수단 숙소까지 가는 동안 렌트한 차의 기름이 거의 떨어져가는 상황에서도 굳이 SK 주유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왜 그랬을까.

한 구단 관계자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모기업이 SK여서 기름 한 방울이라도 SK 주유소에서 넣으면 그만큼 제주 구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스포츠지는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경기를 앞두고 SK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 상대의 기를 뺏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승부의 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 프로 스포츠단 지도자와 관계자들의 애 타는 심정을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스포츠지의 해석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이날 경기에서 포항은 제주를 8-1로 제압해 프로축구 한 경기 한 팀 최다골 신기록을 세우며 승리했다.

남의 집 안방에서 대승을 거둔 포항 관계자로서는 경기 후에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주유소 사건’을 좋게 해석해서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프로야구단 단장들은 대부분 치아가 안 좋다고 한다. 경기를 관전하며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긴장을 해 이를 꽉 깨물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경기 때마다 피가 마를 정도로 신경을 써야하는 구단 관계자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1990년대 한창 잘나가던 대우축구단의 김 모 단장. 그는 경기 당일이면 새벽부터 숙소를 빠져나와 차를 몰고 경기가 열리는 지역을 몇 시간씩 헤매고 다녔다. 이유는 부산 홈경기에서 지나가는 장의차를 본 뒤 팀이 연승을 거뒀기 때문.

당시 그는 “대도시는 그렇다 치고 중소도시에서 경기가 열리는 데 장의차를 일부러 보기 위해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찾아 근처를 몇 시간씩 맴돈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고재욱 관동대 축구팀 감독. 1984년 LG 축구단 트레이너를 시작으로 2000년까지 17시즌 동안 LG와 울산 현대축구단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프로 지도자 시절 승리를 위해 여러 가지 비방을 마련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적을 몸 구석구석에 간직하는 것은 물론이요 경기 전 말을 안했더니 이긴 적이 있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도 안 해 원성을 산 일도 있다. 또 한 기자와 소주를 먹었더니 결과가 좋았다며 LG축구단이 연속 무패 신기록 행진을 할 때에는 경기 후 매일 그 기자를 찾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도 있었다.

“한 골프선수가 여자 속옷을 입고 우승했다고 하던데, 저도 입어 볼까요”라고 물어보며 씩 웃던 거구의 구단 관계자도 있었고 “팀이 깨질 까봐 경기 당일 절대 계란은 안먹는다”는 이도 있었다.

한창 열기가 더해가고 있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경기장 한 구석에서 자신만의 팀 승리 비방을 간직한 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계자들의 모습의 눈에 선하다.

권순일 |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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