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LG, 머릿속에서 ‘저주’를 지워라

입력 2011-09-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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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라는 단어는 각종 스포츠에서 ‘오랜 기간 반복되는 부정적 징크스’라는 의미로 쓰인다.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저주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겪은 ‘밤비노의 저주’인데,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한 이후 무려 84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루스의 애칭 ‘밤비노’를 붙여 만든 용어다.

비슷한 의미로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 월드시리즈 4차전에 염소를 데리고 구장에 입장하려는 남자를 구단 측에서 저지했는데, 이때 원한을 품은 염소의 주인이 “다시는 이곳 리글리필드(컵스의 홈구장)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다”라는 저주를 내뱉었다는 것이다. 그 후 컵스는 단 한번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으니 홧김에 뱉은 말 치고는 상당히 위력적인 ‘저주’였다.

한국 프로야구는 고작 30년 남짓한 짧은 역사 탓인지 저주라고 부를 만한 오랜 징크스가 없었다. 과거 삼성 라이온즈가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할 무렵 ‘삼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국시리즈에서 ‘3승’에 그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고, 한때 모 방송사 객원 해설자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간다 해서 ‘○○펠레의 저주’라는 유머가 돌기도 했으나 ‘저주’라는 단어까지 붙여 주기에는 부족했다.

최근 야구팬들 사이에 ‘저주’라는 말이 유행이다. 2002년 준우승 이후 8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LG 트윈스가 올해도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5위로 내려앉자 ‘DTD의 저주’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임 김재박 감독이 2005년에 롯데 자이언츠를 두고 “내려올 팀은 내려온다(Down Team is Down)”라고 말한 데서 이름 붙여진 것인데, 무던하고 참을성 많기로 유명한 LG팬들도 급기야 ‘저주’를 언급할 정도로 상심과 실망이 컸던 듯 하다.

하지만 행여 선수들까지 그 단어에 얽매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어느 팀이나 슬럼프나 위기가 오는 법이고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나 분위기인데, 그럴 때마다 ‘저주’를 떠올린다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쩌면 보스턴이나 컵스의 불운이 길어졌던 것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베이브 루스와 염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야구에는 “내려올 팀은 내려온다”보다 훨씬 유명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이 있다. 저주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팬들을 눈물 흘리게 만든 LG가 빠른 시일 내에 가장 멋진 모습으로 ‘저주’를 끝내기를 기원한다.

여성 열혈 야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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