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우규민 “공 한 개를 던져도 1군 떠올리며 던졌다”

입력 2011-1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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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시절 마무리 투수로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였던 우규민은 올해 경찰청에서 15승 무패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리며 선발 투수로 변신했다. 그는 이제 2군이 아닌 1군에서 소속팀 LG 유니폼을 입고 야구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작정이다. 스포츠동아DB

‘불규민’서 ‘불 끄는 규민’으로
LG 1군으로 돌아온 우규민의 도전



올시즌 2군서 무패…방어율왕 등극
어머니께서 유니폼 펴놓고 새벽기도
“이제 1군서 당당히 내 실력 보여줄 것”


한 때는 두려움 없는 LG의 수호신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불규민’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본 우규민(26). 그가 경찰청에서 2년간의 담금질을 끝낸 뒤 다시 LG 유니폼을 입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고, 냉탕과 온탕을 오간 탓인지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다. 8일 진주 마무리훈련에 합류해 땀을 흘리기 시작한 그는 “다시 신인이 된 기분이다”며 제3의 야구인생에 도전장을 던졌다.


● 경찰청에서 불패신화를 쓰다

우규민은 올시즌 2군에서 무패가도를 달렸다. 방어율왕에도 올랐다. 김기태 감독은 “LG 마무리까지 맡았던 투수 아니냐. 경찰청에서 좋은 성적도 올렸다. 우리 팀은 마운드부터 판을 짜야하는데 우규민이 가세한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우규민은 지난해 경찰청에 들어가 선발투수로 전환했다. 2003년 LG 입단 후 중간과 마무리를 맡아 불펜투수로만 뛰었던 그가 왜 보직을 변경했을까. “군대를 가면서 첫 번째 목표가 변화구 개발이었어요. LG 입단 후 불펜에서만 뛰었잖아요. 베스트 공으로 타자를 이겨야하니까 시즌 중에는 구종 개발이 힘들더라고요. 캠프에서 만들어도 실전에서 써봐야 다듬어지는데 그게 잘 안 됐죠. 선발로 뛰면 그게 가능할 것 같았어요.”

이심전심일까. 경찰청 첫해 시즌 중반쯤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났다. 유승안 감독이 다가와 “선발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었다.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그러나 휘문고 시절 이후 처음 맡는 선발투수. 힘으로만 던지려다보니 5이닝을 채우기도 버거웠다. 이를 악물고 70개, 80개, 100개…, 투구수를 늘렸다.

LG 시절 캠프에서만 익히던 서클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다. 50개를 던지면 20∼30개는 서클체인지업이었다. “스트라이크로 던지는 체인지업, 볼로 던지는 체인지업을 익혔어요. 마음 편하게 던지니 잘 되더라고요, 손에 감각이 왔어요.”

그는 2010년 10승4패 8세이브, 방어율 3.11을 기록한 뒤 올시즌 15승무패 1세이브, 방어율 2.34로 일취월장한 기량을 발휘하며 경찰청 창단 첫 우승의 주역이 됐다.

우규민은 7일 2011 프로야구 시상식이 끝난 뒤 곧바로 진주 마무리훈련에 합류했다. 모처럼 LG 훈련복을 입고 동료들과 함께 선 우규민. 진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 LG 훈련 시작하는 날, 어머니의 기도

10월 8일 경찰청에서 제대했다. 팀의 배려로 2주간 휴식 후 구리구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눈을 뜬 뒤 거실에서 어머니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동쪽을 향해 등번호 1번이 새겨진 줄무늬 유니폼을 정갈하게 펴놓고, 세숫대야에 물을 떠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처음엔 “지금 뭐 하시고 계시냐”며 웃었지만, 이내 가슴이 뭉클했다.

입대 전 LG팬들이 인터넷 상에서 “불규민”이라고 놀리는 댓글을 보고도 내색을 하지 않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러나 다시 LG 유니폼을 입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저도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다시 신인이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구리에 합류하니까 2년 사이에 모르는 선수들이 많이 생겼던데요. 이제 저도 연차가 꽤 됐다는 걸 느꼈죠. 진주에서 휘문고 후배 임찬규하고 룸메이트가 됐는데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많아져 자칫 1군 엔트리에도 못 들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겼어요.”


● 이제 ‘불규민’은 안 돼야죠.

그는 2006년 17세이브(방어율 1.55), 2007년 30세이브(방어율 2.65)를 올리면서 ‘미래의 LG 소방수’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2008년 1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방어율 4.91, 2009년 7세이브를 올리면서 방어율 5.70으로 부진했다. 급격한 오르막과 급격한 내리막길을 경험했다. “저는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안 좋은 일은 빨리 잊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블론세이브가 연속으로 기록되다보니 제 자신이 작아지더군요.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런데 경찰청에서 자신감을 다시 찾았어요.”

그는 경찰청에서 뛰면서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공 1개를 던져도 1군을 머리에 그리고 던졌다고 했다. “2군타자를 무시한 건 아니지만, 덩치 큰 우타자가 나오면 속으로 ‘이대호다’라고 생각하면서 던졌어요. 힘 좋은 좌타자가 나오면 ‘최형우다’ 생각하고 던졌죠. 내년 시즌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준비를 많이 했어요.”

내년 시즌 선발투수에 도전하는 것일까. 그는 “보직은 감독님이 정해주시는 대로 해야죠. 뭐든 상관 없어요”라며 웃었다. “선발도 좋고, 중간이나 마무리도 좋아요. 입대 전에는 팬들이 ‘불규민’이라고 했지만, 이젠 ‘불 끄는 규민’이 돼야죠. 군입대 전에 팬들에게 ‘2년 후엔 꼭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업그레이드된 모습 보이도록 해야죠.”

진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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