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 김성배 “내가 롯데 로또? 날 찍은 감독님 덕분”

입력 2012-05-1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NC 다이노스 창단과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수입된 ‘2차 드래프트’로 각 팀의 중복 전력이 대거 이동했다. 그 중 두산에서 롯데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사이드암 투수 김성배는 단연 눈에 띈다. 롯데 불펜의 핵으로 거듭났다. 구도 부산에서 시작된 인생역전이다. 스포츠동아DB

2차 드래프트가 찾아낸 롯데 보물 김성배


두산서 팔꿈치 이상으로 주저앉은 인생
작년 양승호감독 강력 요청으로 롯데행
“무조건 널 쓴다” 전폭 지지속 재활 성공

정대현 공백 메우며 불펜 필승조 우뚝
“뇌수술 아버지도 호전…부산 반전 GO!”


어느덧 롯데 사이드암 김성배(31)는 ‘한국형 룰5 드래프트’라는 2차 드래프트의 상징적 성공사례로 떠올랐다. 정대현, 이승호가 없던 상황에서 최대성과 더불어 로또 같은 존재로서 롯데 불펜을 지탱했다. 두산에서 롯데로 옮겨 인생역전의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는 김성배를 탐구해봤다.


○유니폼 욕심에 시작한 야구

김성배는 위아래로 누나와 여동생만 있는 외아들이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하고 싶은 것은 해야 직성이 풀렸다. 서울 장안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형이 야구복을 입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야구가 탐났다. 무조건 하겠다고 우겼다. 엄마는 ‘애가 얼마나 버티겠나?’하는 마음으로 허락했다. 막상 해보니 폼 날 것 같던 환상과 달리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어느 날 단체기합을 받고 온 몸 군데군데에 멍이 들어 귀가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알까 두려워 숨겼다. 그러나 엄마를 속일 수는 없는 법. 곧 발각됐고, 화가 난 엄마는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들은 쓰레기통에서 그 유니폼을 주워서 다시 야구하러 나갔다. 엄마는 그 다음부터 말이 없었다.


○김병현 덕분에 투수로 변신

배명고 1학년 때까지 유격수였다. 투수는 꿈도 안 꿨다. 그런데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만화처럼 운명이 바뀌었다. 광주일고 김병현이 선발로 나오는 것에 대비해 감독은 김성배에게 배팅볼을 던지게 했다. 1루 송구를 할 때도 사이드로 유연하게 던지는 솜씨를 눈여겨봤던 것이다. 배팅볼이지만 죽어라고 던졌다. 그 구위가 감독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야, 너 오늘부터 사이드 투수해라!” 그렇게 투수 김성배는 탄생했다. 그리고 그날 봤던 김병현의 구위는 김성배에게 ‘나도 저렇게 던지고 싶다’는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마침 선배 투수가 실전에서 타구에 맞아 발목을 다쳤다. 더 이상 던질 수 없게 되자 감독은 “네가 나가봐”라며 김성배를 호출했다. “당시 직구가 148km까지 나왔어요. 변화구 던지는 방법도 몰랐죠.” 나중에 슬라이더를 배웠지만 김성배는 파워피처로서 대학(건국대)을 다녔고, 두산에 입단했다.


○윤석환 코치, 양승호 감독에게 받은 은혜

2003년 입단했지만 프로는 역시 달랐다. 빛을 본 것은 2005년부터였다. 그 2년의 수련기간에 가장 고마운 사람은 당시 두산의 김경문 감독, 윤석환 투수코치였다. “2군 있을 때 버스를 타본 적이 없어요. 항상 뛰어다니라고 시키고, 늘 곁에서 지켜본 윤 코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팔꿈치가 발목을 잡았다. 수술 없이 버티겠다는 각오로 상무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예전 같은 직구 구위가 나오지 않자 잊혀져 갔다. 결국 2011년 겨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을 떠나 롯데로 이적했다. 팔꿈치의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롯데가 김성배를 택한 이유는 양승호 감독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두산 코치 시절 김성배의 성실성을 확인한 양 감독은 ‘무조건 1순위로 김성배를 찍으라’고 주문했다. 롯데에 온 김성배를 따로 불러 “너는 내가 무조건 쓴다. 시즌에 맞추라”고 지시했다. 재활을 하느라 사이판 전지훈련에조차 참가하지 못했지만 김성배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이다.


○포크볼로 제2의 전성기 개척

두산 시절인 2005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찾아온 봄, 11일까지 15경기에서 방어율 3.86(11.2이닝 5자책점)을 기록하며 롯데 불펜의 필승조로 거듭났다. 그 힘은 새로 장착한 포크볼에 있었다.

“재작년으로 기억해요. 2군에 있을 때 점심 먹고 장난으로 포수 용덕한 볼을 받아줬는데 각이 좋았어요. 그래서 그립을 가르쳐달라고 했죠. 2년간 잘 안돼서 포기할까도 했는데 드디어 감이 잡혔어요.” 포크볼이 장착되자 직구와 슬라이더만 기억했던 상대 타자들이 현혹되기 시작했다. 직구 구속도 140km대 초반까지 돌아오자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해 뇌수술을 받았던 아버지가 아들 야구 보는 낙에 건강이 호전된 것도 흐뭇하다. 은퇴까지 생각하고 내려왔던 부산에서 김성배의 반전이 시작됐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