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했으면 나랑 해…그게 야통의 프러포즈였죠”… 삼성 류중일 감독의 아내로 사는 법

입력 2012-09-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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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대통령’ 옆에는 현명한 ‘퍼스트레이디’가 있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오른쪽)이 스포츠동아를 통해 최초로 공개한 자택에서 부인 배태연 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삼성 류중일 감독의 아내로 사는 법

만남과 이별 반복하던 동갑 친구
어느날 불쑥 전화 해 “시집 갔어?”
30년 한결같은 순수함이 이 남자 매력

전공 살려 13년째 피아노 학원 운영
야구만 아는 남편, 가정일엔 무관심
남들 볼땐 호칭도 “배원장” “감독님”

가장 없는 명절…여름휴가 남의 일
야구인 아내의 운명, 서운하지 않아
인간 류중일과의 인생동행 정말 행복


삼성 류중일(49) 감독은 지난해 사령탑으로 데뷔하자마자 페넌트레이스 우승∼한국시리즈 우승∼아시아시리즈 우승을 한꺼번에 차지하며 ‘야통(야구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다. 올 시즌에도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이 코앞이다. 1987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그는 선수로, 코치로, 감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해까지 26년간 한해도 쉬지 않고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다. 냉엄한 프로세계에서 단 한번도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도 쉬지 않았기에 명절은 남의 일. ‘야통’을 남편으로 둔 아내는 어떻게 살아갈까.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류 감독의 집을 방문했다.


○명절을 홀로 준비하는 ‘야통’의 아내

“우리 집에 오신 첫 번째 기자님이십니다. 이런 인터뷰는 정말 쑥스러워 집에선 절대 안 하려고 했는데….”

대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 류중일 감독의 아내 배태연(49) 씨는 겸연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배 씨는 이번 추석에도 남편 없이 명절을 보내야 한다. 남편이 목동 넥센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 원정길에 나서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남편이 없어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하면 같이 못 산다”며 웃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웃는 모습이 류 감독과 닮았다.

“예전엔 혼자 명절에 애들 둘 데리고 갈 때 솔직히 힘든 적도 있었어요. 다른 집 아빠들과는 달리 우리 아빠는 항상 야구하고 살았으니까요. 명절도 명절이지만 남들처럼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애가 초등학교 때였는데, 학교신문에 쓰려고 가족사진 가져가야 했는데 돌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애들이 불쌍했어요. 요즘 야구선수를 남편으로 둔 젊은 아내들도 어려움도 많고, 불만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서운하다는 생각 안 한 지 오래 됐어요. 남편이 건강하고 성실하고, 또 애들이 잘 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죠.”

결혼 23년째. 야구선수의 아내, 야구 코치의 아내, 야구 감독의 아내로 살아온 세월만큼 배 씨는 명절을 홀로 준비하는 데도 이제 프로가 돼 있었다.


○친구에서 부부로

어떻게 만났을까. 연애담이 궁금해서 물었다. 류중일 감독은 “얘기하려면 길어”라며 특유의 ‘하회탈 웃음’을 지었다. “경북고 3학년 때 부산에서 동문회 행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이 우리를 집에 초대하셨지. 거기서 집 사람을 처음 봤어.”

당시 배 씨는 부산대 음대 1학년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했다. 나이는 같지만 류 감독이 중학교 시절 1년간 유급하면서 학년 차이가 났던 것. 류 감독이 한양대에 진학하면서 지금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배 씨는 “(남편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부터 착하고 순수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보통 여자친구한테 선물을 하면 비싸고 근사한 선물을 하는데, 저한테 배지나 열쇠고리 같은 걸 선물하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그런 순수한 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시절. 류 감독은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시집갔냐?”고 물은 뒤 “아직 안 갔다”는 대답을 듣고는 “나하고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다. 두 사람은 1990년 결혼에 이르렀다.


○만인의 연인은 한 사람의 연인이 될 수 없다!

아들 둘은 집에 없다. 큰 아들 호윤은 중학교 3학년 때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가서 현재 뉴욕의 한 대학(4학년)을 다니고 있다. 둘째 아들 승훈은 올해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두 아들도 없고, 남편도 없는 생활이 쓸쓸할 법도 하다.

배 씨는 2000년부터 전공을 살려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선수에서 코치가 되면서 연봉이 급격하게 줄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느덧 13년째가 됐다. 부부는 남들이 볼 때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다고 했다. 류중일 감독은 “배 원장”이라고 하고, 아내는 “감독님”이라고 부른단다.

유명인을 남편으로 둔 심정은 어떨까. 배 씨는 “만인의 연인은 한 사람의 연인이 안 된다고 하지 않느냐”며 웃었다. 자랑스럽고 좋은 면도 있지만, 가족은 힘든 점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도 제 이름 없이 ‘류중일의 아내’로 살아가지만, 아들 둘도 ‘류중일의 아들’로 살아왔어요. 큰 나무 아래에는 작은 나무가 자랄 수 없고 그늘이 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아들 둘을 멀리 보냈어요. 아빠의 그늘 밑에서 자라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라고.”

삼성 류중일 감독이 자신의 야구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집과 그 주변에서 아내 배태연 씨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대구|박화용 기자




○야구만 아는 남편, 야구를 모르는 아내

남편은 야구만 안다. 야구 외에는 관심 있는 일도 거의 없다. 집안일은 해본 적이 없다. 설거지 한번, 청소 한번 도와준 적도 없다. 그러나 배 씨는 “거기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며 웃었다.

“남편은 바깥일이 많잖아요. 제가 집안일을 잘 못해도 잔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그럼 됐죠.” 류중일 감독도 “와이프는 지금까지 내가 늦게 들어와도 ‘왜 늦게 들어오느냐’, ‘뭐하다 늦게 들어오느냐’고 한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다. 아내가 나를 믿어주니까, 나도 미안해서 일찍 들어올 때가 많다”고 화답했다.

야구인 류중일을 만난 지도 30년이나 됐다. 이제 야구에 대해 전문가 수준이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배 씨는 “야구를 잘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혼하고 야구장에는 딱 한번 가봤다”고 했다. “저 말고도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많잖아요. 물론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제가 피아노 칠 때 남편이 앞에 앉아있으면 제대로 칠 수 있겠어요? 똑같을 것 같아요. 제가 야구장 가지 않는 게 응원해주는 일인 것 같아요. TV로 대충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보지만, 가슴이 떨리고 숨이 막혀서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도 없어요.”


○“인간 류중일의 아내는 괜찮아요”

남편은 감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지만 그 이면에는 남모를 아픔도 있을 법하다. 배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선 바깥일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고민이 많은가 봐요. 시즌 초반에 7등하고 그랬을 때 본인도 모르게 집에서 한숨을 쉴 때가 많았어요. 신문을 보다가도 갑자기 답답한지 ‘아!’ 그러면서 고함을 지를 때도 있었어요. 지금 얘기하면 자기는 ‘그런 적 없다’고 하는데 옆에서 볼 땐 너무 애처로워요. 선수 때와는 비교가 안 돼요.”

야구인 류중일의 아내로 살아갈 만할까? 배 씨는 “솔직히 야구선수 류중일, 야구 감독 류중일의 아내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인간 류중일의 아내로 살아가는 건 괜찮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명한 감독이 된 지금까지도 순수한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대구|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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