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히메네스 “벼랑끝 나를 품은 롯데…내 마지막 팀”

입력 2014-05-08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베네수엘라에서 날아온 외국인타자 루이스 히메네스가 롯데를 춤추게 하고 있다. 정확성과 더불어 시원한 장타까지 갖춘 새 용병타자에 부산 팬들은 벌써부터 열광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타점 공동 1위·OPS 2위 히메네스

13세때 가난 탈출하려고 시작한 야구
1999년 ML행 불구 13여년간 저니맨

ML 드림 접고 좌절한 내게 손 내민 롯데
상대 정보 등 알려주는 따뜻한 동료들…
맹타 비결? 팀 위해 찬스 안 놓치는 것


한국에서 남미의 베네수엘라로 가는 직항 편은 현재 없다. 미국이나 유럽을 경유해서 들어가야 한다. 환승시간까지 합치면 족히 하루는 걸린다. ‘세상의 끝’처럼 먼 느낌의 이곳에서 날아온 외국인 한 명이 ‘야도’ 부산을 홀리고 있다.

루이스 히메네스(32). 7일까지 타율(0.395) 홈런(8개) 타점(29점) 등 타격 3부문에서 톱 3위 안에 들어있다. 타점은 NC 이호준과 공동 1위다. 장타율(0.744)과 출루율(0.486)의 합계인 OPS는 1.230에 달한다.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4월10일 한국 데뷔전인 사직 LG전에서 연장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다. 4월26일 사직 SK전에서는 마무리 박희수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뽑아냈다. 롯데는 ‘히메네스 효과’로 팀 득점(189점)이 전체 1위다. 팀 타율(0.295)도 1위다. ‘1명의 천재가 조직 전체를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 시점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 히메네스. 그를 7일 사직에서 만났다. 히메네스는 남미 사람 특유의 에너지로 끝없이 얘기를 풀어놓아 인터뷰하는 기자나 롯데 이정홍 통역을 진땀나게 했다. 히메네스는 은퇴 후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면 야구 해설가를 할 계획이다.


● 가난 벗어나려 배트 잡아…미국 스카우트 자동차 선물 주며 ‘입도선매’

히메네스는 “베네수엘라는 아름다운 나라다. 다만 지금 정쟁이 심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히메네스가 어렸을 적 베네수엘라는 빈부격차가 더 심했다. 히메네스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였는데 한 달 봉급이 30∼40달러에 불과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까지 하게 되자 히메네스와 하나뿐인 여동생만 남았다. 집안에 남자라곤 히메네스 혼자였다. 히메네스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집념이 강했고 그 수단이 야구였다. 베네수엘라는 야구의 나라였고, 히메네스는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컸다.

여섯 살 때 야구를 시작해 열세 살 때 클리블랜드가 설립한 베네수엘라 야구학교에 입학했다. 1루수 포수 외야수를 두루 봤는데 수비보다 치는데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야구학교에서 히메네스는 살아남지 못했다. 방출이 됐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반겼다. 아들이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메네스는 포기하지 않고, 현지 지역 야구팀에서 뛰었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오클랜드 스카우트 눈에 띄었다. 이 스카우트는 히메네스의 나이가 아직 어린 것을 고려해 곧바로 계약서를 내밀지 않고 어머니에게 자동차를 선물했다. 조건은 “몇 년 후 히메네스가 계약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바로 사인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또 반대했으나 히메네스는 1999년 1월19일 오클랜드와 사인을 했다. 그렇게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 롯데는 ‘야구졸업’ 이후의 야구…“내 인생의 마지막 팀”

‘아메리칸 드림’은 손에 잡힐 듯 했지만 끝내 그를 외면했다. 고달픈 마이너리그 인생의 연속이었다. 오클랜드(1999년)∼볼티모어(2001년)∼LA다저스(2003년)∼미네소타(2004년)∼보스턴(2006년)∼볼티모어(2007년)∼ 워싱턴(2007년)∼일본프로야구 니혼햄(2009년)∼시애틀(2011년)∼토론토(2012년)를 전전하는 저니맨 인생이 거듭됐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2012년 시애틀에서의 7경기(17타수 1안타 1볼넷 4삼진)가 전부였다.

히메네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접고 미국 생활을 청산해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다. 히메네스는 “야구졸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지난해 롯데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일본에서 실패했던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만회하고 싶었다. 히메네스는 자기가 뛴 나라의 언어로 문신을 새기는데 이제 한국어도 추가될 것이다.

히메네스는 “이제 메이저리그 도전은 다시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롯데를 인생의 마지막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롯데 모두가 최고의 동료들이다. 내가 상대 투수를 모르니까 살짝 다가와서 정보를 주고 간다”고 덧붙였다. (히메네스 인터뷰는 귀빈실에서 진행됐는데 그는 인터뷰 내내 필드를 응시했다. 훈련스타트 시점에 맞춰 자기도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마냥 스스럼없이 구는 것 같아도 나름 롯데의 규칙을 존중하고 있었다.)


● “잘 치는 비결? 그것이 나의 일이다”

7일까지 히메네스의 득점권 타율은 0.448이다. 8홈런 중 6홈런이 주자를 두고 나왔다. 롯데에 결여됐던 클러치 능력이 히메네스 1명 덕분에 해결됐다. 히메네스는 “내 역할을 이해하고 집중할 뿐이다. 찬스에서 잘 치는 것이 나의 일이자 임무”라고 말했다. 꼭 장타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엔 땅볼만 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히메네스는 “야구에 비결은 없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장점인 선구안에 대해서는 ‘학습능력’을 강조했다. 생소한 투수들이 많다보니 경험을 하면 반드시 복습을 한다. 히메네스가 박흥식 타격코치나 동료 타자들에게 정보를 자주 구한다. 덕아웃에서 영양가 없는 수다만 떠는 것이 아닌 것이다. 동영상도 늘 본다. 히메네스는 “볼을 골라내려면 공부해야 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히메네스는 롯데의 레전드 용병 원조 격인 펠릭스 호세를 알까? 이 통역은 “이름만 들어봤지 히메네스가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히메네스를 보며 호세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 롯데 루이스 히메네스는?

▲1982년 5월7일 베네수엘라 출생 ▲좌투좌타 ▲신장 192cm·체중 127kg ▲2014년 롯데 입단(계약금 5만 달러·연봉 25만 달러)

사직|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