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ML 단장 열전] 선수 출신 흑인 ML 단장, 디백스의 부활 책임지다

입력 2015-01-0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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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데이브 스튜어트 단장

통산 168승·WS MVP 등 슈퍼스타 출신
코치·에이전트 거치며 인종차별 설움도
지난해 단장 취임…팀 침체기 극복 과제

메이저리그(ML) 30개 구단 단장 가운데 ML 선수 출신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LA 에인절스의 제리 디포토,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루벤 아마로 주니어, 애리조나 디백스의 데이브 스튜어트 등 4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스튜어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초라한 ML 경력을 지녔다. 투수였던 디포토는 ML 통산 27승을 거뒀으며, 빈과 아마로 주니어는 2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한 평범한 타자였다. 반면 지난해 9월 26일 디백스의 신임 단장으로 지명된 스튜어트는 통산 168승을 따낸 슈퍼스타 출신이다. 이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투수코치와 스포츠 에이전트로도 활약한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김병현이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던 2001년에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오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디백스는 스튜어트를 단장으로 영입하며 ‘제 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 인종차별의 벽

1957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야구는 물론 풋볼과 농구 선수로 재능을 뽐냈다. 건장한 체격까지 갖춰 무려 30개 대학 풋볼 팀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며 스카우트 공세를 펼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야구였다.

197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스튜어트는 16라운드에서 LA 다저스에 지명됐다. 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강한 어깨를 지녀 투수로 전향했다. 1977년부터 2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31승을 따내고도 빅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1978년 9월 23일 딱 한 경기에 구원투수로 출전했을 뿐 1979년부터 또 다시 2년 동안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다. 심지어 1980년에는 트리플A 앨버커키 듀크스에서 15승을 올리며 팀을 퍼시픽코스트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빅리그 진출 대신 트레이드 대상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탓이었다.


● 끝없는 시련

우여곡절 끝에 1981년부터 다저스 멤버로 활동한 그는 주로 구원투수로 뛰었다. 그해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지만 결국 1983년 8월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 그의 트레이드 상대는 현재 다저스의 투수코치인 릭 허니컷이었다. 1984년 7승14패(방어율 4.75)를 기록한 그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듬해에는 단 1승도 없이 6패에 방어율 5.42를 기록했다.

한때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을 고려하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체결한 그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데다 팔을 다쳤다는 루머까지 나돌아 1986년 시즌 도중 방출되는 설움까지 맛봤다. 이듬해 볼티모어 오리올스 트라이아웃에 참여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메이저리그는커녕 더블A 로스터도 보장할 수 없다’는 치욕적인 답을 듣고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 고향 팀에서 만개하다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고향 팀 오클랜드였다. 방출된 지 2주 만에 계약을 체결한 그는 9승5패(방어율 3.74)를 기록하며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배수진을 친 덕분이었다. 2년 50만 달러의 조건에 재계약을 체결한 그는 1987년부터 무려 4년 연속 20승 이상을 따내며 재능을 꽃피웠다. 특히 1989년은 그의 인생 최고의 해였다. 당시 오클랜드 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는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놀란 라이언 대신 스튜어트를 올스타전 아메리칸리그 선발투수로 지목했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활약은 눈부셨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2승을 따낸 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어츠와의 ‘베이 시리즈(월드시리즈)’에서도 2승을 거둬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듬해 6월 30일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생애 최다인 22승을 기록했다. 토론토로 팀을 옮긴 후에는 1993년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현역 시절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18경기에 출전해 10승6패(방어율 2.84)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특히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는 8승 무패를 기록했다.


● 18년의 도전

1995년 7월 현역 은퇴를 한 그는 이듬해부터 오클랜드의 샌디 앤더슨 단장 보좌역으로 프런트 일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팀을 옮겨 케빈 타워스 단장을 보좌했다. 그의 꿈은 메이저리그 단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워스 단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1998년부터 샌디에이고 투수코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도를 받아 앤디 애시비, 스털링 히치콕, 조이 해밀턴 등의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탄탄해진 마운드는 토니 그윈이 주축이 된 공격진과 함께 조화를 이뤘고, 샌디에이고는 그해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토론토에서도 투수코치로 명성을 떨친 그는 2001년 공석이 된 팀의 유력한 단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JP 리카디에게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큰 상실감을 맛 본 스튜어트는 폴 갓프리 구단주를 ‘인종 차별주의자’라며 맹비난을 퍼부은 후 팀을 떠났다. 2002년 밀워키 브루어스의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긴 그에게 이번에는 감독의 기회가 찾아왔다. 팀이 3승12패로 시즌을 시작하자 밀워키가 데이비 롭스 감독이 해고를 당한 것. 하지만 이번에도 스튜어트 대신 벤치코치였던 제리 로이스터(전 롯데 감독)가 감독으로 임명됐다.


● 새로운 도전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에서 미국 대표팀의 투수코치를 지낸 그는 ‘스튜어트 매니지먼트 파트너스’라는 회사를 차리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변신했다. 선수 출신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굵직굵직한 딜을 성사시켜 에이전트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에릭 차베스와 어슬레틱스가 맺은 6년 6800만 달러의 딜을 성사시킨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맷 켐프와 채드 빌링슬리도 그의 고객이었다.

지난해 9월 디백스의 단장직 제의를 받은 그는 어슬레틱스 시절 동료였던 데이브 헨더슨에게 회사를 맡기고 이를 수락했다. 현역 은퇴 이후 18년 동안 도전했던 ML 단장의 꿈을 마침내 이룬 것이다. 선수 생활 경험이 없는 아이비리그 출신 수재들이 ML 단장으로 판을 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선수, 투수코치, 프론트, 에이전트까지 두루 경험한 그가 단장으로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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