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드러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규정

입력 2016-03-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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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시크라. 스포츠동아DB

‘부상 이후 8주간 연봉 지급’ 규정 후
시즌연봉 다 받을 시점 부상 늘어나
6R 이후 교체금지 규정도 구단 발목


‘NH농협 2015∼2016 V리그’에선 유난히 부상선수가 많다. 여자부 각 팀은 돌아가면서 주전들의 부상으로 가슴을 쳤다. 그나마 국내선수들은 큰 부상이 아니면 경기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인선수는 다르다. 올 시즌 여자부에서 처음 도입된 트라이아웃으로 선발한 6명의 외국인선수 중 무려 5명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발생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다. GS칼텍스 캣벨은 시즌 준비과정에서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구단은 교체도 검토했지만 더 나은 선수를 데려온다는 보장이 없어 그냥 참고 갔다. 이후 흥국생명 테일러, 인삼공사 헤일리, IBK기업은행 맥마혼, 도로공사 시크라가 차례로 탈이 났다.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 묘한 부상발생 시기와 외국인선수들의 책임감

캣벨을 제외하고는 모두 4라운드 이후 고장이 났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질 무렵이었다. 그만큼 V리그의 일정이 힘들다는 방증이다. 프로무대 경험이 적은 외국인선수들이 견뎌내기에는 6라운드 30경기가 무리라는 얘기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지난해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미국배구협회에 선수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내세운 명분은 2개였다. 미국의 여자 유망주에게 취업 기회를 주고, 기량 발전을 위한 무대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처럼 외국인선수들은 V리그를 경험하면서 기량이 늘었다. 그러나 부상도 많이 당했다. 미국측에서 다른 생각을 품을 수도 있게 됐다.

또 하나 짚어볼 대목은 외국인선수들의 의지다. KOVO는 부상이 발생하면 이후 8주간의 연봉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시즌 연봉을 모두 보장받기 시작한 시점에서 몇몇 외국인선수들은 아프다고 했다. 일부러 다친 것은 아니겠지만, 몇몇 선수들은 의심이 갈 행동도 했다. 규정에 밝은 에이전트의 입김이 들어갔을 개연성이 크다. 모 구단 관계자는 “우리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다쳤다고 애가 타는데, 그 선수는 바로 집에 돌아갈 생각부터 하더라”고 밝혔다. 다음 시즌에 대한 보장이 없는 이들에게 국내선수들 같은 책임감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 제 발목을 잡은 대체선수 규정

2016∼2017시즌부터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시행하는 남자부는 올 시즌 여자부의 사례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여자부 트라이아웃 규정을 만들면서 간과했던 부분에서 모두 문제점이 불거졌다.

우선 대체선수 규정. 현 제도 아래서는 외국인선수가 다치면 새로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흥국생명이 이를 잘 보여줬다. 끝까지 안 다치면 좋겠지만 누구도 알 수 없다. 구단이 요행만 바라기에는 결과가 너무 무섭다.

외국인선수 교체시기도 변수다. 6라운드 이후 교체 금지가 올 시즌 여자부 규정이다.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IBK기업은행의 맥마혼이 6라운드에 탈이 났다. 구단은 열심히 치료해서 맥마혼을 출전시키려고 하겠지만, 만일 어렵다고 한다면 플랜B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맥마혼의 결정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해마다 수십억 원을 투자하면서 오직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구단으로선 규정이 딴죽을 건다면 너무도 억울할 것이다.

그래서 남자부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24명 외에도 1차 서류심사에 참가한 40명 정도로 대체선수의 풀을 넓힌다고 했다. 시즌 도중 어느 때라도 교체가 가능하도록 이사회에서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자부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 선수 기량과 참가자 수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풍문처럼 들리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 다음 시즌 여자부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외국인선수들이 예상보다 적고, 기량도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KOVO는 다음 시즌 여자부 트라이아웃 때는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캐나다,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쿠바 등 6개국으로 문호를 확대한다. 그래서 감독들은 새로운 선수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우선 쿠바 선수들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트라이아웃에 참가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과의 국교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은 협회 차원에서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위해 자국의 유망주들을 해외무대에 내놓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금 여자부 각 구단은 KOVO가 약속한 기일 내에 보내줄 트라이아웃 참가자 명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처럼 마냥 마감일을 연기해줄 것 같지는 않다. 참가자의 수준이 기대이하면 다른 대책을 강구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최악의 경우 2명 보유·1명 출전, 대체선수로 아시아선수 중 선발, 트라이아웃 비참가자 중 선발 등이 플랜B를 요구할 수도 있다. 향후 여자부 각 구단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모아질지 궁금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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