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조차 잃은 현주엽…감독 스트레스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입력 2017-11-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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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역량이 승패에 큰 영향을 주는 농구는 사령탑이 받는 스트레스가 다른 종목보다 훨씬 심하다. KBL 10개 구단의 감독 모두가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다. 4월 감독이 된 뒤 부쩍 흰머리가 늘어난 LG 현주엽 감독. 사진제공|LG 세이커스

■ 프로농구 감독들 ‘스트레스와의 전쟁’

현주엽 감독 “자꾸 지니까 술 생각 안 들어”
담배 입에 댄 조동현…불면증 앓는 김승기
유재학 감독도 병원서 “몸 망가진다” 경고

대부분 농구로 쌓인 스트레스 농구로 풀어
해외 영상 찾아보고 코치들과 수다 떨기도


프로스포츠는 승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세계다. 매 경기 승패에 따라 팀의 운명이 천당과 지옥으로 엇갈린다. 그래서 선수들을 이끄는 감독들은 스트레스가 상상 이상이다. 지면 당연히 고민이고 이겨도 고민이 생긴다. 그래서 감독의 진짜 역할은 고민하고 욕먹는 것이라고 한다.

농구는 감독의 역량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펼치는 플레이도 중요하지만 선수기용, 작전타임을 부르는 타이밍, 매 순간 상황에 맞춘 전술변화, 선수들의 출전시간 분배 등 감독의 전략에 따라 승패가 자주 가려진다. 미국의 교수가 쓴 논문에 따르면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농구감독이 한 경기 승패에 미치는 요소는 무려 25∼30%다. 미국 5대 프로스포츠(농구, 야구, 축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가운데 미식축구(40%)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고 야구는 최하다. 그만큼 농구감독들의 스트레스도 많다.

10월 11일 프로농구 10개 구단 감독들은 시즌개막을 앞두고 미디어데이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유재학(모비스) 감독은 추일승(오리온) 감독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건강 잘 챙겨라”고 했다. 유재학 감독과 추일승 감독은 1963년생 동갑내기이자 1986년 기아(현 모비스) 입단 동기다.

승패의 세계를 떠나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한 kt 조동현 감독, 혈압이 높아져 약을 먹고 있는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오른쪽). 사진제공|KBL



● 흰머리는 기본, 병원 신세 안지면 다행

LG 현주엽 감독은 4월 부임한 초보 감독이다. 지난시즌까지는 MBC스포츠플러스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TV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병행하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갔다. 감독 부임 이후 7개월이 지나는 동안 현 감독의 표정에서는 웃음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흰머리가 늘었다.

현 감독은 “감독 자리가 힘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흰머리가 너무 많아져서 염색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주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시즌에 돌입하면서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이기고 기분 좋게 소주 한 잔 하면 좋겠지만 자꾸 지니까 술 생각마저 들지 않더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kt 조동현 감독은 성적부진 탓에 매 순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kt는 15일 모비스를 89-80으로 꺾고 6연패의 수렁에서 벗어났지만, 13경기에서 단 2승(11패)을 거뒀을 뿐이다. 선수시절 일절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던 그는 2년 전부터 이따금씩 담배를 피운다. 조 감독은 “훈련 때 강조했던 부분이 정작 경기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거나 경기 도중 내가 놓친 부분으로 경기에서 패하면 마음이 답답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시즌 KGC를 통합우승으로 이끈 김승기 감독은 불면증을 앓고 있다. 그는 “아쉽게 승리를 놓친 뒤에는 도저히 잠이 안 온다. 특히 내 준비부족으로 진 경기는 더 그렇다. 혼자 끙끙 앓다가 밤을 새기도 한다. 흰머리는 기본이고 머리도 엄청 빠졌다”고 말했다.

경험 많은 베테랑 감독들도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20년째 감독 생활을 하는 유재학 감독은 지난여름 병원을 찾았다가 깜짝놀랐다. 아내와 함께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가 아내를 혼냈다. “이렇게 남편의 몸이 망가지도록 내버려두면 어떻게 하냐”는 얘기였다. 유 감독에게는 “이러다가는 얼마 못가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얘기까지 했다. 이후 유 감독은 흡연량을 줄이고 술을 끊었다. 그러나 시즌에 돌입해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4개월가량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댔다.

코트 위에서는 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유도훈(전자랜드) 감독도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유 감독은 5일 모비스와의 홈경기에서 90-68의 대승을 거둔 뒤 선수들을 칭찬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기력이 없었다.

경기 직후 은근 응급실로 이동해 링거를 맞았다. 최근에는 혈압이 높아져 약을 복용하고 있다. 유도훈 감독은 “최근 들어 혈압이 높아졌다.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 병원에서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서 약을 먹는다”고 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KGC 김승기 감독, 의사로부터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은 모비스 유재학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스트레스 어떻게 푸나

더 큰 문제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10개 구단 감독 대부분은 선수∼지도자 생활을 거치는 동안 농구에만 전념해왔기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다른 취미가 없다. 술, 담배가 전부다.

그나마 나이 50줄에 접어든 감독들은 건강문제로 이마저도 줄여나가는 추세여서 해소 방법이 없다. 오프시즌 때는 감독 모임 또는 지인들과 골프도 간혹 하지만, 시즌 중에는 라운드에 나설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마저 없다.

또 성적이 나쁜 감독이 골프를 하면 “운동 안 하고 골프만 친다”는 나쁜 소문이 나기 때문에 선뜻 하지도 못한다. 구단이 감독을 내칠 때 시즌 도중에 골프를 쳤는지 여부가 중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감히 생각도 못한다.

어쩔 수 없어 대부분의 감독들이 농구로 쌓인 스트레스를 농구로 푼다.

추일승, 추승균(KCC), 현주엽, 조동현 감독은 농구 영상을 본다. 각자 팀의 경기를 복기하면서 잘된 점, 잘되지 않은 점을 파악해 다음날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추승균 감독은 정선규, 최승태 코치와 밤낮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답답함이 풀리지 않으면 기분전환 삼아 해외리그 경기를 본다. 그는 슬로베이나의 18세 ‘신성’ 루카 돈치치(203cm·레알마드리드)의 팬이다. 추승균 감독은 “견문을 넓히고 공부도 할 겸해서 마음이 답답할 때는 해외리그 경기를 본다. 돈치치 같은 선수를 한 번 데리고 농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한다”며 웃었다.

문경은(SK) 감독은 코치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수들과 모바일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선수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공감대를 나누기 위해서다.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는 이상범(동부) 감독은 자신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선수들을 위해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고충을 듣는다.

‘휴식도 훈련의 연속이다’는 지론의 이상민(삼성) 감독은 일단 숙소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해서 자신 뿐 아니라 선수단 전체에 자유를 준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는 단골 분식집을 찾거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한다. 농구생각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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