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 없이 많은 특급 유망주가 프로에 데뷔했지만 상당수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만큼 프로의 벽은 높다. ‘베이징 키즈’ 선두주자 KT 강백호는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고 팀은 물론 KBO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스포츠동아DB
강백호(19·KT)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강백호는 KT가 1군에 진입한 4년간 뛰었던 모든 이들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낳았다. 성적도 빼어났다. 타율 3할을 넘나들었으며 전반기에만 16홈런을 때렸다. 박재홍이 1996년 기록한 신인 최다 홈런(30개)도 욕심낼 법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제 막 프로 1년차 전반기를 치렀을 뿐이라는 점이다. 강백호에게 전반기를 마친 소회를 들어봤다.
● 정신없던 전반기, 스스로 매긴 점수는 90점
-이제 전반기가 끝났다. 기대를 모았던 특급 신인에서 팀의 주축으로 훌쩍 성장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나 싶을 정도다. 살면서 이렇게 바쁜 적이 없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KT위즈파크 5분 거리에 집을 구했는데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아마추어 때는 이동거리가 적어도 1시간 30분이었는데, 그 시간을 자는 데 쓰고 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도 먹고. 여러 모로 좋다.”
-개막 직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통과 의례처럼 극복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했을 텐데.
“부담도 많이 느끼고 힘들었다. ‘기대만 못 하네’라는 얘기도 들었다. 불안감이 찾아왔다. ‘내일은 경기에 못 뛰겠구나. 어쩌지.’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잡아주신 분이 채종범 타격코치님이다. 채 코치님은 ‘자존감을 높여라. 네가 최고’라고 기를 살려주셨다. 지나간 타석 결과는 바뀌지 않으니 미래 지향적으로 생각하라고 주문하셨다. 지금은 못 쳐도 ‘내일 잘 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 한 끗 차이가 큰 것 같다.”
-채종범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간 뒤 이숭용 타격코치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 코치도 강백호 칭찬에 여념이 없다.
“이숭용 코치님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특히 같은 좌타자 출신이라 타석에서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신다. 나를 좋게 평가해주시니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에서 타격코치 두 분을 만났는데, 모두 은인이다. 아무래도 코치 복이 있는 것 같다.”
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지난달부터 1군에 올라온 KT 이숭용 타격코치는 “심정수, 박병호와 프로 생활을 함께했지만 적응력만큼은 강백호가 최고다. 같은 변화구에 두 번은 안 속는 느낌이다.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가 더 궁금하다”고 극찬했다.
-슬럼프를 극복한 뒤부터 확실히 타격 성적이 좋다. ‘프로에 적응이 끝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타격이 많이 좋아졌다. 아마추어 때는 변화구 홈런이 거의 없었는데 프로에서는 절반이 변화구 홈런이다. 조금은 눈을 뜬 것 같다. 그런데 전반기 최대 성과는 타격이 아니라 수비의 성장이다. ‘반쪽 선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다. 매일 같이 경기장에서 수비 특훈을 받았다. 아마추어 때 외야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백지에서 처음 시작하는 각오로 도전했다. 이제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전반기 4개월 만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신에게 몇 점을 주겠나.
“90점이다. 깎인 10점은 수비 때문이다. 초반 모습 그대로였다면 더 많은 점수를 깎아먹었겠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10점만 깎겠다. (웃음)”
● “외동아들인 내가 부모님께 효도해 기분 좋았다”
-전반기 16개의 홈런을 때렸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3연속 경기 홈런 때 나온 것들.(강백호는 7월 7일 사직 롯데전부터 10일 수원 두산전까지 3연속 경기 홈런포를 가동했다.) 세 번 모두 변화구를 공략했다. 5월 20일 수원 NC전 홈런도 기억난다. 슬럼프에서 벗어난 뒤 5월에 처음 때린 홈런이었다.(가장 의미 있던 홈런은.) 아무래도 KIA와의 개막전 첫 타석에서 헥터 노에시에게 때린 홈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적으로는 최악의 홈런이었다. 나조차 ‘타구가 어디갔지’하며 어리바리했다. 홈런은 다 좋지만, 최근 홈런들이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더 마음에 든다.”
-전반기 87경기를 치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6월 10일 수원 넥센전이다.”
KT는 이날을 ‘강백호 데이’로 지정, 강백호의 아버지가 시구, 어머니가 시타, 강백호가 시포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강백호의 아버지는 사회인 야구에서 각종 상을 휩쓰는 ‘에이스급 투수’지만 정작 시구 때는 힘을 쓰지 못했다. 강백호는 “아버지가 미끄러지면서 본인 공을 못 던졌다.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나셨다. 그날 홈런을 쳤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큰 선물을 드린 것 같다. 외동아들인 내가 효도한 느낌이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 단 6개월, 강백호가 KT에 완전히 녹아든 시간
강백호는 지명 직후부터 모든 관심을 받았다. 언론은 물론 감독과 코치도 강백호 삼매경이었다. 이런 스포트라이트는 자칫 동료들의 질투를 사기 쉽다. 하지만 강백호는 특유의 재간으로 이미 KT 선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베이징 키즈’ 동기들의 존재는 프로생활에 큰 의지가 될 것 같다.
“지금도 매일같이 연락한다. 오히려 야구 얘기는 최대한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 사실 이번 올스타전에 못 갈 거라고 생각해 동기들과 여행 계획을 세웠다.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전에 참가하게 돼 무산됐다. 퓨처스 올스타에 참가하는 (한)동희와 만날 생각이다.”
-비록 최종 발탁은 실패했지만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 포함됐다.
“맹세코 내가 못 가도 좋으니, (고)영표형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최종 엔트리 발표 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표형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저히 영화를 볼 상황이 아니라 도중에 박차고 나왔다. 영표형이 대표팀에 뽑히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는데 아쉬웠다.”
-선배들과 잘 융화됐지만 이는 라커룸과 덕아웃의 이야기다. 그라운드 위 야구는 별개다. 아무래도 팀 성적이 좋지 않다보니 고졸 신인임에도 본인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상당한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부담을 느꼈다면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그저 막내로서 내 할 일에 충실하면 된다. 팀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받치는 역할이다. 선배들이 잘 이끌고 계신다. 부담을 느끼거나 긴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타율 3할과 20홈런 모두 가능할 것 같다. 전반기를 보낸 결과 본인을 어떤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변하고 싶다. 안타 하나가 필요할 때는 정교한 타자, 홈런이 필요할 때는 거포가 되고 싶다. 솔직히 홈런 안 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칠 수 있다고 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팀이 필요로 하는 타격을 하는 선수가 정말 좋은 타자라고 생각한다.”
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후반기 마무리가 중요하다. 목표는.
“굳이 후반기 뿐 아니라 앞으로도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수가 되고 싶다. ‘쟤가 타석에 나가면 뭐라도 되겠다’는 분위기를 우리와 상대 팀에 심어주는 것이 목표다.”
인터뷰는 7월 10일 수원 두산전 종료 직후 진행됐다. 강백호가 0-1로 뒤지던 3회, ‘무패투수’ 세스 후랭코프 상대로 역전 투런포를 때려낸 날이다. 강백호는 인터뷰에 앞서 “기자님, 잠시 영상 하나만 보고 시작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이 후랭코프 상대로 때려내 홈런 영상을 수차례 돌려봤다. “속구, 슬라이더, 커터를 염두에 뒀지만 커브는 생각 못했다. 내 스윙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넘어갔다. 신기하다”며 밝게 웃었다. 경기 직후부터 자신을 분석하는 성실함에 흔들리지 않는 멘탈. 강백호가 왜 KBO리그 돌풍의 주인공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원|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