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알려지자마자 전 소속팀이었던 현대건설 선수들은 문상을 갔고 많은 배구인과 동료 선후배 선수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2013년 프로입단 동기인 공윤희(전 흥국생명)는 자신의 SNS에 영안실 안내판 사진을 올렸다. 많은 선수들은 “이제 더 이상 힘들지 않은 곳에서 편하게 쉬기를 바란다”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2013~2014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은 고인은 윙 공격수로 V리그에서 7시즌 동안 활약했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리시브 실력으로 살림꾼 역할을 했다. 특히 2018~2019시즌 외국인선수 베키 페리의 조기이탈로 팀이 흔들릴 때 그 자리를 메우면서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현대건설과 FA계약을 맺었다. 2019~2020시즌에는 황민경, 고예림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고, 리베로 김연견이 큰 부상을 당하자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꿔 잠시 출전했다. V리그 통산 성적은 7시즌 154경기 401세트 출전, 193득점 27서브 18블로킹 461리시브 460디그다.
처음 맡아보는 리베로 역할이 부담스러워 다시 윙 공격수 자리로 돌아갔지만 이때 몇몇 저질 팬들로부터 받은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배구를 포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즌이 중단됐던 3월 초 숙소를 떠났다. 구단은 5월 1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며칠 전까지 SNS에 사진을 올리고 평소처럼 활동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선수 생활동안 받아온 많은 비난과 좌절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는 짐작할 수 있다.
고인만이 아니라 현재 V리그에서 뛰는 많은 선수들이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해 저질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여자 선수들을 외모비하는 물론이고 상식 이하의 악성 댓글로 공격한다. 배구는 다른 종목보다 이 현상이 더 심한데 현장의 감독들은 지금의 상황을 한탄하고 있다. 진작부터 누군가 나서서 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마련했어야 좋았지만 한국배구연맹(KOVO)은 그동안 뒤로 물러서 있었다.
과거 몇몇 선수들에게 퍼붓는 비난이 지속적이고 가족까지 거론하는 등 한계를 넘자 구단이 따로 법적인 대응을 검토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않았다. 프로스포츠 단체가 팬을 상대로 법적대응을 한다는 부담감과 혹시나 일반 팬들로부터 받을 비난을 더 두려워해서였다. 그러다보니 점점 악성 댓글의 강도는 높아졌고 특정인에게 지속적인 가해를 하는 상황이다.
댓글 기능을 만들어 이런 상황을 유도한 사람들의 책임도 크지만 누구도 해결을 미뤄 선수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불합리를 두고 봐야 할지 KOVO와 구단이 공동으로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됐다. V리그 전체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악성 댓글과 전쟁을 벌여서 좋은 팬과 이들을 분리하는 정책이 나와야 할 때라는 것을 이번 비극은 보여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저질 댓글이 없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