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V리그 최장수 단장의 깔끔한 퇴장

입력 2020-09-08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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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최장수 단장이던 이유성 대한항공 전무(63)가 일선에서 물러났다. 7월부터 배구 현장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이 단장은 8월 31일자로 대한항공 인사에서 사표가 수리됐다. 건강이 좋지 않아 몇 년 전부터 현장을 떠나 자유로운 생활을 꿈꿔왔던 그는 7월초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의 일부 인사들에게만 사퇴 의사를 알린 뒤 사표를 제출했다.

뒤끝 없는 성격처럼 물러날 때도 깔끔했다. 퇴임을 결정한 그날 회사의 법인카드와 승용차는 물론이고 휴대전화까지 반납한 뒤 모든 연락을 끊었다. 행여라도 주변의 만류로 퇴진이 번복될 상황을 스스로 차단했다. 대한항공은 만류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어 사표를 수리했다. 1982년 3월 대한항공 탁구단 코치로 시작해 무려 39년간 이어진 직장생활 마무리였다.


탁구선수 출신의 이 단장은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남북여자단일팀의 코치로도 유명하다. 현정화, 홍차옥, 리분희, 유순복으로 구성된 단일팀은 세계 최강 중국을 무너뜨리고 여자단체전 우승을 차지하는 ‘지바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가 가끔 털어놓은 단일팀의 훈련 과정과 에피소드는 소설 몇 권 분량이 나올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1993~1995년, 2002~2004년 2차례나 여자탁구대표팀 감독으로 일했던 그는 성실성과 충성심을 인정받아 2005년부터 대한항공 스포츠단장을 맡았다. 2008년에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자 부회장으로 10년간 협회의 실무를 담당했다. 2020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2021년으로 연기) 유치에도 큰 힘을 보탰다.


2004년 현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대한항공 임원이 됐고, 2012년 전무로 승진했다. 스포츠단장으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경기도 신갈에 배구전용 체육관과 숙소를 지은 것이다. 지금도 이 시설은 대한항공 선수들이 이용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엄했지만 유니폼을 벗고 나면 따뜻하게 대했다. 성격이 불같아서 열심히 하지 않거나 체육인답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많은 질책도 했다. 그래서 오해도 샀지만 항상 “은퇴 이후 준비를 잘하라”며 사회생활에 서툰 선수들을 걱정했고, 갈 곳 없는 선수들의 일자리도 알선해줬다.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기 팀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팀으로도 언제든지 보내줬다.

2017년 조원태 당시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로 선임된 뒤로는 집행부를 위해 배구계 현안을 막후에서 해결하는 일도 했다. 그 덕에 올 2월 KOVO 이사회에서 조 총재는 만장일치로 3년 연임에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 탁구단은 16세의 기대주 신유빈을 입단시켰다. 5월에는 배구단 신임 사령탑으로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을 선임했다. 7월에는 대한체육회가 첫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조양호 전 회장을 선정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며 물러날 결심을 했다. 그는 “그동안 겨울에 단 하루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첫 직장을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몰랐다. 내가 먼저 내려놓아야 다음 사람이 스포츠단을 위해 많은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당분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쉬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생각이다. 그동안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지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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