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받던 막내가 구축한 KT 문화…박경수는 증명하려 한다 [최익래의 피에스타]

입력 2021-11-1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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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당시 KT 위즈는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시즌을 준비 중이었다. 직전 해인 2019년 이강철 감독의 첫 시즌에 창단 첫 5할 승률(71승2무71패)을 거두며 최고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아쉽게 6위에 그쳐 가을야구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2020년에는 첫 포스트시즌(PS) 진출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로 가득했다.

캠프 중 만난 박경수(37)의 표정도 그랬다. 박경수는 “이제 우리 팀을 쉽게 보는 시선이 진짜 사라진 것 같다”고 밝혔다. 2015년 1군 진입 이후 3년 연속 10위, 4년차에 거둔 최고 성적이 9위였으니 타 팀 입장에서 KT를 쉽게 보고 들어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타 팀 일부 선수들은 KT전에 맞춰 로테이션 일정을 바꾸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전해 듣는 KT 선수들의 기분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 시선을 벗겨낸 뒤라 표정은 밝았다. 박경수는 “이제 약체 꼬리표를 뗐으니 KT만의 문화를 갖추는 게 유니폼을 벗기 전까지 내 역할”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팀 KT’. 이 감독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키플레이어, 최우수선수(MVP)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언제나 팀 KT를 말한다. 승리의 지분을 떠나 언제나 하나로 움직이는 팀. 박경수가 바라던 그들만의 문화는 이제 KT의 상징이 됐다. 이 과정에서 박경수, 유한준 등 베테랑의 역할이 상당하다. 타격지표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여도다. 이 감독이 언제나 고마운 선수로 그들의 이름을 첫 머리에 꼽는 이유다.


팀이 강해지는 사이, 박경수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했다. 2021년 정규시즌 118경기에 출장해 거둔 성적은 타율 0.192, 9홈런, 33타점. KT 이적 후 가장 좋지 않다. 덕아웃 리더로서 팀 문화 구축에 성공한 기여도는 모두가 인정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10월 31일 삼성 라이온즈와 타이브레이커를 통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을 때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을 때도 언제나 그랬다. 타이브레이커에서 1-0으로 앞선 9회말, 구자욱의 타구를 건져내 1루로 송구해 아웃을 이끌어냈다. 그 순간 박경수는 20대 때 그대로였다. 포효하는 그를 보고 벤치에 있던 유한준은 이미 그 때부터 눈시울을 붉혔다는 후문이다. 145번째 경기 27번째 아웃카운트가 잡히는 순간, 박경수는 유한준과 뜨겁게 포옹했다.

“타이브레이커 경기 그 수비 하나로 주목을 받는 것 같아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가 갑자기 숟가락을 얹는 느낌이다. 내가 이런 기쁨과 감동을 느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제기한 자격 논란. 사실 ‘팀 KT’의 구성원들 모두가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선수단, 코칭스태프, 팬들 모두 마찬가지다. 박경수는 KS 2차전 1회초, 모두가 포기한 타구를 포착한 뒤 병살타로 연결하며 포효했다. 보통 타격 성적으로 꼽는 데일리MVP 타이틀을 당당히 따낸 것도 흐름을 바꾼 호수비 덕분이다.

다들 아는데 당사자만 모르는 상징성과 기여도. 히어로 변신은 끝났다. 올 가을 박경수의 스포트라이트 자격을 위한 여정, 동반자는 ‘팀 KT’다.

고척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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