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눈치보고 말 아껴…긴장감 넘쳤던 女복싱 남북 기자회견[파리 2024]

입력 2024-08-09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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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8일 여자 복싱 54㎏급 경기 후 기자회견 진행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한 임애지와 달리
방철미는 北지도자 눈치보며 최소한의 대답만
대답하는 데 소비한 시간과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같았다.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메달 시상식 후 기자회견은 긴장감이 넘쳤다.

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롤랑가로스에서 대회 복싱 여자 54㎏급 결승전과 메달 시상식이 끝난 뒤, 경기 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번 대회 대부분의 메달 결정전 이후 기자회견은 승자와 패자의 희비보다는, 함께 고생한 메달리스트들이 서로를 독려하며 웃음꽃이 가득한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눈치와 정적, 긴장감으로만 가득했다.

기자회견에는 금메달리스트 창위안(중국), 은메달을 획득한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가 자리했다. 그리고 나란히 동메달을 획득한 임애지(화순군청)와 방철미(북한)가 동석했다.

올림픽 복싱은 별도의 3·4위전 없이, 준결승전에 진출한 선수 두 명 모두에게 동메달을 준다.

임애지는 기자회견 이전에 진행한 믹스트존에서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뽐내며 “(메달을 따) 좋다”며 웃었으나, 기자회견장에서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방철미는 믹스트존에서 한국 취재진이 잡으려 했지만 반응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기자회견장에선 창위안과 아크바시뿐 아니라, 방철미와 임애지에게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이때 방철미는 답을 피하진 않았으나, 모든 질문에 힘없이 조용하게 답했다.

먼저 방철미에게 동메달을 딴 소감을 묻자 한참을 생각한 뒤 “1등을 생각하고 왔지만 3등밖에 쟁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거 창위안과 붙은 경험과 관련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냐고 묻자 오랜 시간 뜸을 들인 뒤 “올림픽은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결과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했다.

방철미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대답하기 전에 기자회견장 옆쪽에 서 있던 북한 지도자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임애지에게는 ‘지난번 (준결승 때) 방철미를 안아봐도 되냐고 했는데, 시상식이나 무대 위 아닌 곳에서 안았냐’고 묻자 “비밀로 하겠다”고 답했다.

방철미가 이번 기자회견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보인 순간이었다. 다만 미소를 띤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이후 임애지와 방철미에게 같은 질문이 두 차례 나왔다.

‘남과 북이 같이 동메달을 딴 소감’을 묻자 방철미는 “선수로서 같은 순위에 든 것일 뿐”이라며 “다른 감정은 없다”고 답했다.

임애지는 “내가 원하는 (금메달이란) 결과는 아니었지만, 다음에는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올림픽 메달을 땄는데, 누구에게 걸어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임애지는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많은 분을 만나 한 번씩 걸어드리고 싶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방철미는 “내가 동메달을 바란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누군가에게 걸어줄 만큼) 기분이 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방철미는 말없이 기자회견을 떠났고, 임애지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파리=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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