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7일 대전구장. 전광판 라인업에 우리 히어로즈 2번타자 겸 좌익수로 전준호(39)의 이름이 떴다. 그리고 5회가 끝나면서 공식경기로 인정됐다.
사상 최초 2000경기 출장. 지난해 삼성 양준혁의 2000안타, 그리고 전날 한화 송진우의 2000탈삼진과 함께 전준호는 프로야구 역사에 ‘2000’이라는 숫자를 아로새겼다. 1991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뒤 18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전투에 참가한 ‘역전(歷戰)의 용사’ 전준호를 11일 목동구장에서 만났다.
○ 육상선수로 출발한 늦깎이 야구선수
마산 상남초 시절 100m, 200m, 넓이뛰기 선수였다. 그러나 학교에 야구부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당돌하게 야구부가 있는 마산동중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당시 감독의 허락을 받고 학교수업을 마치면 중학교에 가서 야구를 배웠다. 야구를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사실상 중학교 1학년. 늦게 야구에 입문했지만 그는 여느 선수들보다 오래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산고 시절 투수였던 전준호는 영남대로 진학해 타자로 전향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가 롯데의 91년 신인 2차 2순위 지명을 받게 됐다.
○ 행운의 프로 데뷔전
전준호는 “입단 당시 주목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경기에 출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개막전 라인업에 내 이름이 올라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91년 개막전인 4월 5일 대구 삼성전. 당시 삼성 선발투수는 재일동포 잠수함투수 김성길이었다. 강병철 감독은 유두열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준호를 7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장시켰다. 유두열은 우리 히어로즈의 내야수 유재신의 아버지로 그해 은퇴했다.
전준호는 2회 첫 타석과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좌중간안타를 때렸고, 8회 네 번째 타석에서 우전안타를 친 뒤 도루까지 성공했다. 4타수 3안타 1도루 1타점. 그러면서 곧바로 주전으로 발탁됐고,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1번타자로 올라섰다.
그는 “개막전 선발투수가 김성길이 아니었다면 내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면서 “그날 나의 첫 경기, 첫 안타, 첫 도루가 시작됐다. 내 자신이 18년간 프로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라고 말했다.
○ 도루하면서 2000경기 대기록
그는 대학을 졸업했고,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부상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가냘픈 몸매(72kg)의 도루하는 선수다. 93년 75도루로 사상 최초로 70도루 시대를 열었고, 세 차례나 도루왕에 올랐다. 16일 현재 역대 유일한 개인통산 500도루(538개) 달성자. 올 시즌 도루 4개를 추가하면 사상 첫 18년연속 두자릿수 도루도 기록한다.
그는 “도루 때문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고 경기에 못나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도루능력이 어필되면서 수비와 타격이 부진할 때도 출장해 오히려 경기수가 많아진 측면도 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초반 선수들이 몸을 아끼며 도루수가 줄었는데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요즘 이종욱 이대형 정근우 등 도루로 팬들에게 어필하는 선수가 많이 나오고 ㄴ다. 팬들은 홈런만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나도 도루하는데 부담이 생기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마흔된 선수가 도루하는 것도 볼거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오늘이 나의 마지막 경기
그는 “지금 마흔이 돼서야 2000경기 기록을 세웠다”면서 “우리나라도 좋은 기록들이 나오려면 경기수가 더 늘어야한다. 요즘은 고교졸업 선수가 많다. 후배들이 더 좋은 기록들을 남겼으면 좋겠다. 나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불혹의 나이지만 호성적을 ㄴ리고 있다. 지난해 2억5000만원 연봉에서 7000만원으로 깎이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타율 0.355(172타수 61안타). 규정타석을 채우며 SK 박재홍(0.367)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목동구장 좌측 외야석에 걸려있는 자신의 기록 현황판을 가리켰다. 왼쪽에는 경기출장수, 오른쪽에는 안타수가 표시돼 있다. “2000안타까지 40개 가량 남았는데 예전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젊은 선수와 달리 우리나라 풍토에서 나이든 선수는 한 두 경기 부진하면 곧바로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 세대교체 대상으로 지목된다. 젊은 선수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안타 40개도 참 멀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나의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18년간 녹색 그라운드에 청춘을 다 바쳤고, 아직도 세월의 맞바람을 뚫고 전력질주하고 있는 전준호. 그는 역사를 들어올린 ‘작은 거인’이자 끊임없이 도전하는 ‘영원한 현역’이다.
전준호는 누구?
출생: 1969년2월15일 마산
체격: 180cm,72kg
가족: 아내 이상미(39)씨와 1녀1남
출신교: 상남초-마산동중-마산고-영남대
프로생활: 롯데(1991∼1996)-현대(1997∼2007)-우리(2008∼)
수상: 도루왕 3회(1993.19 95, 2004년), 골든글러브 3회(1993, 1995, 1998년)
통산기록: 2006경기, 타율 0.29 2, 1962 안타, 2루타 208개, 3루타 97개, 홈런 41개, 도루 538개, 4사구 939개, 1150득점, 556타점(16일 현재)
목동=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