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그의믿음과내침사이

입력 2008-06-19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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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두산 베어스의 이미지는 어땠는가? 우즈, 김동주, 더 나아가 OB시절의 김상호, 김형석 등 덩치 큰 선수들이 나와 타석 뒤에서부터 투수들을 주눅들게 하는 연습 배팅을 하고 들어서 홈런 아니면 장타를 노리던, 말 그대로 프랜차이즈 ′베어스′의 이름에 걸맞게 곰처럼 우직한 플레이를 하던 팀? 그런 팀이 2004년, 2005년을 지나더니 지금은 8개 구단 중 가장 빠른 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젠 이미 과거의 베어스 시절부터 있던 김동주를 제외한다면 그다지 홈런을 노릴만한 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현수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타율 랭킹 쪽에 명함을 내밀고 있으며, 도리어 갸냘픈 축의 고영민이 팀 내 홈런 2위이다.
이 모든 건 김경문 감독의 부임 이후 변하기 시작한 것들이다. 이제 김인식 감독을 넘어서는 ′믿음의 감독′으로 불리는 김경문 감독은 이종욱-고영민-민병헌의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들을 주전으로 못박아 기용하면서 곰 야구를 달리는 야구로 바꿔버렸다. 김민호→손시헌처럼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도 있었지만, 장원진처럼 부상을 이유로 주전 자리를 일찍 내놔야 했던 선수도 있었고, 단지 몇 년 전만해도 국내 최고의 2루수라며 삼성으로의 거액 FA계약 설이 있었던 안경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포지션을 빼앗기고 1루로 가야만 했다. 이런 감독이라면 선수들의 입장은 어떨까? 10년을 가능성만 무궁무진하게 보내며 만년 유망주로 보내야 할지도 몰랐을 젊은 선수들에게는 설레임과 같은 존재겠지만 노장이나 주전 확정자들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감독일 것이다. 올해도 이미 두산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홍성흔, 안경현이 뒷방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 문제(?)는 김경문 감독의 이런 기용철학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데 있다. 제 아무리 프랜차이즈가 어떻고, 베테랑의 힘이 어떻고 하는 얘길 한들 젊고, 유망하고 심지어 값도 싼 선수가 있다면 그를 쓰고 싶지 않은 감독이나 구단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 선수가 아직 여물지 않아 기록과 경험 면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쓰지 않을 뿐이다. 자리를 내준 기존 선수들의 입장에선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길 바랄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론 적으로 김 감독의 이런 결단은 아직 실패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쉽사리 이의를 달 수도 없게 됐다. ▲영원한 믿음은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개혁은 어렵다. 늘 하던 대로가 아닌 새로운 방식을 택할 때는 언제나 그에 따르는 책임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종종 어떤 경우에는 감독의 선택으로 주전이 되거나 영입이 된 선수가 실패작으로 판명남에도 불구하고 오기와 독선으로 인해 주구장창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의 경우는 믿음도 확실히, 그 대신 오류를 수정하는 일도 빠르다. 비근한 예로 우여곡절 끝에 안방을 차지한 채상병의 경우가 있다. 국가대표 단골포수, 올스타 투표 단골손님으로 국내에서 가장 파이팅 넘치던 홍성흔을 밀어내고 채상병이 두산의 안방마님이 되자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1할 대의 형편없는 타격과 그렇다고 썩 훌륭하지도 못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선발 출전 명단에 들어가면서 김 감독의 고집이 팀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지던 게 바로 얼마 전. 그런 그가 별안간 LG의 2군에만 머물고 있던 최승환을 영입하더니 곧바로 그의 활용 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채상병에게는 이런 말을 남기면서. ″그 동안 채상병이 수고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믿음은 확실히 보여주지만, ′이제는 나도 주전′이라고 방심하는 사이 새로운 선수가 다시 자신을 위협하는 그야말로 야생의 세계이다. 서로 양 극단에 있는 것과 같은 믿음과 내침의 경계선. 그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김경문 감독은 공포의 선두질주를 하고 있는 SK와의 3연전을 앞두고 랜들을 2군으로 내리는 또 하나의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렸다. 그게 최근의 부진함 때문이었든, 소문대로 레스의 방출 이후 정신적으로 불안했기 때문이든 두산이 힘겨운 2위 싸움을 하고 있는 팀임을 감안하면, 전쟁의 리더가 개막전 1,2,3선발이 모두 빠지거나 정상 컨디션이 아님에도 남은 선수로 팀을 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는 분명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 mlbpark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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