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뒤엔맹부삼천지교있었네!…앤서니김출생부터우승까지

입력 2008-05-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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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라지 위해 골프장 인근 이사 아들 징크스 우려 경기장도 안가 5일(한국시간) 생애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한 재미동포 앤서니 김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오늘날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부모님의 뒷바라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앤서니 김은 LA에서 어렸을 적부터 골프 꿈나무로 알려진 유망주였다.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부친 김성중 씨(66·미국명 폴 김)를 빼놓을 수가 없다. LA에서 한약재상 ‘미주녹용’을 운영했던 김 씨는 아들의 골프를 위해 집도 팜스프링스 인근 PGA 웨스트 골프장으로 옮길 정도로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우승 후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한 김 씨는 “나도 다그치면서 하드 트레이닝을 시켰지만 본인이 따라주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며 우승의 공을 전적으로 아들에게 돌렸다. “앤서니를 늦게 얻었다”는 부친은 “앤서니가 우유병 물고 기저귀 찼을 때부터 골프를 했다”고 한다. 현재 팜스프링스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 씨는 1남1녀를 뒀고, 앤서니의 누나는 교편을 잡고 있다. 40세가 넘어 앤서니를 얻었으니 늦둥이나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어요. 그 때는 골프채널이 없었는데 PGA 골프 테이프를 틀어주면 울다가도 그치고 골프를 너무 좋아했어요. 7세 때까지는 제가 가르쳤고 8세부터 UCLA 헤드코치에게 맡겼죠”라고 김 씨는 말했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골프에 전념시키기 위해 팜스프링스의 골프장 옆으로 집을 옮겼다. 여러 곳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며 스카우트를 하려고 했지만 진 레이건 코치와의 인연 때문에 오클라호마 대학으로 진학했다. 현재 앤서니는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거주하고 있다. 세금이 면제돼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 “최근 앤서니가 2개월 동안 부진했어요. 쉬고 싶었다고 해요. 대회가 끝나면 골프채도 만져보지 않고 다음 대회에 출전했어요. 그러다보니 2연속 대회에서 컷도 통과하지 못해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지난 달 21일 끝난 버라이즌 대회 전부터 1주일 동안 정신을 차리고 훈련에 임하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오늘 우승까지 하게 됐습니다”는 게 이날 TV를 통해 우승을 지켜본 부친의 말이다. 김성중 씨는 3라운드에서 선두로 나서 대회장에 갈 생각도 있었는데 혹시 아들에게 징크스가 생길까봐 피했다. “원래 앤서니가 쇼트게임을 잘하는 데 최근 기량을 50정도 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프레드 펑크가 보고 쇼트게임을 칭찬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앤서니 김은 이번 와코비아 챔피언십에서 4라운드 동안 108차례(평균 27회)의 퍼트로 이 부문 2위를 마크해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들이 승부욕이 강하다”는 부친은 “앤서니의 꿈은 훗날 존경받는 골퍼가 되는 것이다”고 했다. 아놀드 파머, 잭 니클러스와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되고픈 것이다. 22세 10개월 15일의 어린 나이로 PGA 첫 우승을 한 앤서니 김은 이제 첫 단추를 꿰었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그의 DNA는 김치찌개를 찾는 한국인이다. 아울러 그의 뒤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아버지 김성중 씨가 여전히 후원자로 있다. LA=문상열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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