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전55기…“난새가슴이아니야”

입력 2009-09-21 16: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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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연. 스포츠동아 DB

삼성월드챔피언십최나연우승7타차선두달리다15번홀서역전당해
야구에서 콜드게임 승리를 눈앞에 뒀다가 어이 없이 역전당한 뒤 결국 9회 말 상대의 실수를 틈타 끝내기 안타로 이긴 경기와 같았다.

‘얼짱 골퍼’ 최나연(22·SK텔레콤)이 미 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총상금 100만 달러) 마지막 72번째 홀에서 천금의 버디로 고대하던 첫 승을 따냈다. LPGA 출전 55개 대회 만에 따낸 생애 첫 번째의 감격적인 우승이다.

최나연은 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인근 토리파인스 남코스(파72·6721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쳐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2위 미야자토 아이(일본)를 1타 차로 따돌린 극적인 우승이었다.

단독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최나연은 컨디션이 좋았다. 한때 2위와 7타차나 앞서며 편안한 우승을 예고했다. 그러나 아직 한 차례도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던 최나연에게 후반 9홀은 기나긴 터널과 같았다.

지난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연장으로 끌려가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에게 우승컵을 내준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버디 2개와 이글 1개로 19언더파까지 성적을 낮춘 최나연에게 우승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준 시련은 9번홀에서 찾아왔다. 보기가 문제였다. 3m 거리의 버디 기회를 살리지 못한 뒤, 파 퍼트마저 놓치면서 보기로 홀 아웃했다.

이후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이었다.

10번(파4)과 11번홀(파3)에서 연속보기로 무너졌다. 15번홀(파4)에서 또 한 차례 보기를 기록하며 선두까지 내줬다. 최나연의 얼굴은 핏기가 가셨다. 7-0으로 이기던 경기가 9회 초에서 뒤집힌 꼴이었다. 자포자기.

15번 홀 이후 최나연의 플레이에는 기(氣)가 빠져 있었다.

우승은 거의 물건나간 것처럼 보였다. 또 한 번 새가슴이란 단어가 떠오를 때쯤 시련의 터널 저 너머로 행운의 여신이 손짓을 했다.

시즌 두 번째 우승에 1홀만 남겨뒀던 일본여자 골프의 최고스타 미야자토 아이가 18번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렸다. 어이없는 실책이었다. 결국 그는 보기로 1타를 잃으면서 경기를 마감했다.

이제 다시 우승 여부는 최나연의 손에 달렸다. 드라이버와 세컨드 샷은 좋았다. 퍼터로 친 어프로치가 기대보다 짧은 것이 조금 안타깝기는 했다.

1.5m 거리의 버디 퍼트. 평소라면 아무 문제없지만 우승이 걸린 퍼트. 게다가 역전패도 자주 당해 승부에 약한 선수라는 소리까지 듣던 터였다.

프로들도 가장 까다롭다는 죽음의 거리. 최나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퍼트를 했다. 공은 똑바로 홀컵을 찾아 들어갔다. 우승. 동반자 신지애가 다가와 축하의 포옹을 해줬지만 최나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기적을 실감하지 못한 것인지 화끈한 우승 세리머니도 없었다.

대역전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서 재역전으로 우승컵을 따낸 최나연은 우승상금 25만 달러를 챙겨 상금순위 공동 9위(94만5701달러)로 뛰어올랐다.

지난 7월 에비앙마스터스에서 투어 첫 우승을 따냈던 미야자토는 혹시나 하며 경기를 바라본 뒤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며 4관왕 등극을 노렸던 신지애(21·미래에셋)는 이날 2타를 잃고 11언더파 277타, 3위로 경기를 마쳤다. 상금 10만6925달러를 추가해 시즌 총상금 160만5786달러로 미야자토(145만1610달러)를 15만 달러 차로 앞서 상금랭킹 1위를 지켰다. 7위(5언더파 283타)에 그친 크리스티 커(미국·140만6271달러)는 상금랭킹 3위로 밀려났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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