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에서 클럽 매니저를 하는 것은 기상청에서 일기예보를 하는 것과 같다. 언제 폭풍우가 올지 알기 때문이다. 우승을 하더라도 팬들이 즐거워하는 공격축구로 하는 것이 목표라는 아스널의 웽거 감독이 한 말이다. 올 해로 EPL 빅 4중 하나인 아스널을 12년째 이끌며 수많은 성공신화를 쓴 이 명장이 요즘 에미레이트 구장에 몰려온 먹구름으로 고민이 깊다. 팀의 핵심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거나 이탈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 줄줄이 떠나는 주전들,궁지에 몰린 웽거
2003-2004 시즌 아스널이 무패로 EPL에서 우승할 당시 전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골키퍼 옌스 레만이 독일 VFB 슈투트카르트로 이적한 데 이어 중앙 미드필더 마티유 플라미니도 이탈리아 AC 밀란으로 연봉 9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4년 계약을 체결했다. 아스널 입장에서는 파브레가스와 함께 찰떡궁합을 보이며 가공할 미드필드 라인을 구축했던 플라미니의 공백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2007-2008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패싱을 시도한 그의 안정되고 견고한 패싱력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또한 시즌 30골을 기록한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는 이적의 시기만 남겨 놓은 형국이다. 처음 이적을 추진했던 바르셀로나에 이어 AC 밀란도 최근 관심을 표명한 가운데 아데바요르 본인도 아스널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AC밀란의 기술이사인 레오나르도는 “우리가 공격수 영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지금 후보들을 물색 중에 있다. 첼시의 드록바도 좋은 선수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정말 아데바요르를 원한다. 우리는 이적을 위한 적당한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라고 아데바요르가 이적 1순위임을 밝혔다. 아데바요르도 지난 시즌 활약을 근거로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연봉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다른 클럽으로의 이적을 강력히 요구 중이다.
○ 감독 대 선수, 선수 대 선수
웽거 감독은 이런 아데바요르의 요구에 대해 그를 아스널에 계속 붙잡아 두려 하지 않을 거라며 그 이유가 아데바요르가 원하는 주급 2억 5000만원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혀 아데바요르의 이적을 추진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벨로루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일컬어지는 공격형 미드필더 알렉산더 흘렙마저도 매니저 웽거와 팀 동료 파브레가스에 비판의 포문을 열며 이적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드필드 좌우 어디에서도 뛸 수 있고 스트라이커 바로 뒤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이는 흘렙은 자신은 웽거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지난 시즌에 두 번이나 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웽거와는 축구를 보는 관점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며 현재 두 클럽과 협상이 진행 중에 있고 곧 팀이 결정될 거라며 이적을 기정사실화했다.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를 선호한다는 흘렙은 자신이 아스널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웽거가 기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떠난다는 것을 기뻐할지도 모른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미 북 런던 고급 주택가 햄프스테드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이사준비를 마친 흘렙은 웽거에 이어 파브레가스에 대해서도 평소 가지고 있던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파브레가스는 슈팅을 날릴 기회만 오면 슛을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이런 파브레가스의 행동은 이기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모두 보여주지 못한 주 원인 중에 하나가 이런 팀 동료 파브레가스에 있다고 밝혀 아스널을 떠나려는 이유가 파브레가스와도 무관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흘렙이 가고 싶어하는 바르셀로나도 데쿠를 첼시로 보내고 플레이메이커가 필요한 시점이고 유로 2008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친 제니트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안드레이 야르샤빈의 이적불발로 흘렙의 이적에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아스널, 빅 4에서 밀려나나
이런 아스널의 주력 선수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있음에도 정작 웽거가 내놓을 이렇다 할 비책이 없다는 사실이 이번 시즌 빅4의 잔류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의 근거다. 문제의 핵심은 아스널의 재정상태가 맨유, 첼시, 리버풀과 같은 수준으로 투자할 만큼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아데바요르의 연봉인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정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아스널은 새로운 선수를 사올 여유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윙어 겸 스트라이커인 로빈 반 페르시는 “아스널은 선수들이 받아야 할 만큼의 많은 돈을 주려 하지 않는다. 팀을 유지하고 싶다면 선수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나는 아데바요르 같은 선수를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클럽에서 세네 배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떠나고 싶지 않겠나” 라고 아스널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전했다.
전 아스널의 부회장 데이비드 데인은 “첼시는 승점 1점당 30억원, 맨유는 25억원을 쓴다. 그런데 아스널은 20억원 밖에 쓸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스널이 17년 기한의 부채상환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웽거 입장에서는 새 선수 영입은 고사하고 부채를 갚기위해 해마다 돈이 될 만한 스타급 선수를 팔아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비록 파브레가스는 여전히 웽거에 절대적 충성을 다짐하며 잔류를 선언했지만 데인의 주장대로 이 재정의 악순환을 끊지 않고는 웽거와 아스널의 미래가 어둡다 할 것이다.
웽거는 2004년 무패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 된 후 “빅 클럽들은 그들이 안정성이 있을 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것과 팀을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다” 라고 해 자신이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견실한 팀을 육성해 우승했음을 과시한 적이 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한 시즌을 앞두고 있는 웽거는 에미레이트 홈 구장에 드리운 먹구름을 몰아내고 자신이 왜 명장인가를 입증할 중대한 시점을 맞고 있다.
요크(영국)=전홍석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