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조이 보토, 쳤다 하면 빨랫줄 아니면 걸어나가는 ‘퍼펙트 타자’

입력 2013-06-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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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보토. 사진출처|MLB.COM

■ 신시내티 레즈 간판스타 조이 보토

프리에이전트(FA) 제도가 활성화된 현대야구에서 이적하지 않고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나 신시내티 레즈의 간판스타 조이 보토(30)는 예외다. 보토는 지난해 4월 10년간 2억2500만달러의 조건으로 계약연장에 합의했다. 1년 옵션까지 포함하면 2024년까지 레즈의 붉은 유니폼을 입는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연봉 총액 기준으로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 10년 2억7500만달러·텍사스 레인저스 10년 2억5200만달러)와 앨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 10년 2억4000만달러)의 뒤를 잇는 역대 4번째에 해당하는 초대형 계약이다.

플라이볼보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많아
득점·볼넷·출루율도 1위…신개념 파워 히터

캐나다 토론토 출신…추신수보다 한 살 어려
테드 윌리엄스 저서 읽으며 빅리거 꿈 키워

2007년 빅리그 데뷔 올스타 3번·MVP 1번
구단도 10년 계약 연장에 2억달러 ‘돈다발’

●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양산하는 중장거리 타자


보토는 약점을 찾기 힘든 타자다. 중장거리 타자이면서도 타율이 높고, 선구안도 좋아 늘 출루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최근 ESPN은 ‘보토가 파워 히터의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다른 홈런 타자들과 달리 보토는 높게 떠오르는 플라이볼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더 많이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9월 LA 다저스전 4회말 조 블랜튼(현 LA 에인절스)을 상대로 3루쪽 파울플라이로 아웃됐는데, 지난 시즌 내내 보토가 친 유일한 내야플라이였다는 것이다.

타구의 방향과 구질을 분석하는 ‘베이스볼 인포 솔루션’에 따르면, 2002년 이후 150타수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 중 플라이볼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더 많았던 이는 10명뿐이다. 가장 대표적 선수는 양키스 데릭 지터로 5차례(2002·2003·2006·2011·2012년)나 되는데, 그 중 4차례 1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렸다. 지터 외에도 양키스 스즈키 이치로(2002·2004·2012년), 미네소타 트윈스 조 마우어(2011·201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이클 영(2007년) 등도 이 범주에 해당되는 교타자들인데, 파워 히터 중에선 올 시즌 보토가 이 리스트에 유일하게 포함됐다.

5월 31일을 기준으로 보토는 203타수에서 라인드라이브 타구(30.8%)가 플라이볼(26.3%)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홈런을 10개나 기록하고 있다. 추신수와 함께 레즈 공격의 핵을 이루고 있는 보토는 4일(한국시간) 현재 내셔널리그에서 득점(46개) 공동 1위, 볼넷(47개) 1위, 출루율(0.454) 1위, 타율(0.330) 4위, 홈런(10개) 공동 11위, 장타율(0.523) 9위에 올라있어 2010년에 이어 생애 2번째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넘보고 있다.


● 테드 윌리엄스를 동경한 캐나다산 거포

1983년 9월 10일 태어난 보토는 추신수보다 한 살 어리다. 아이스하키의 본고장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방에 걸린 테드 윌리엄스의 사진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고교를 마친 2002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4번으로 레즈에 지명됐고, 처음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006년 더블A에서 타율 0.319, 22홈런을 기록하며 퓨처스게임 월드팀 대표로 선발돼 주목을 받았다. 마이너리그 5년 동안 테드 윌리엄스가 쓴 ‘타격의 과학’이라는 책을 늘 손에 지니고 다니며 빅리거의 꿈을 키웠다.

2007년 9월 5일 뉴욕 메츠전에서 대타로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보토는 기예르모 모타(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삼진을 당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처음 주전으로 출전해 첫 타석에서 그 해 15승을 거둔 존 메인(현 마이애미 말린스)으로부터 홈런을 뽑아내는 등 3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24경기에서 타율 0.321, 4홈런, 17타점으로 인상적 활약을 펼쳐 스타 탄생을 예고한 데 이어 2008년부터 스콧 해티버그(은퇴)를 밀어내고 당당히 주전을 차지했다. 그해 84타점을 쓸어 담아 1956년 프랭크 로빈슨이 보유하고 있던 레즈 구단 루키 최다 타점 기록을 1점차로 뛰어 넘었다. 내셔널리그 루키 가운데 타율(0.297), 안타(156개), 홈런(24개), 출루율(0.368), 장타율(0.506) 등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신인왕은 시카고 컵스 포수 지오바니 소토(현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내주고 말았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보토는 조국 캐나다 대표로 참가했다. 첫 경기 미국과의 대결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5타수 4안타를 치며 고군분투했지만, 5-6으로 패해 빛이 바랬다. 2009시즌 부상으로 31경기에 결장했지만 타율 0.322, 25홈런, 84타점, 출루율 0.414, 장타율 0.567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징크스’도 너끈히 극복했다.

2010년은 보토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생애 최고의 해였다. 당시 올스타전 로스터 마지막 한 자리를 팬들의 투표로 선정했는데, 총 2600만명 중 1370만명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아 내셔널리그 대표로 당당히 뽑혔다. 타율 0.324, 37홈런, 113타점, 106득점의 성적표를 받아 든 그는 출루율(0.424), 장타율(0.600), OPS(1.024)까지 모두 리그 1위를 휩쓸었다. 당연히 내셔널리그 MVP는 그의 차지였다. 1표를 가져 간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앨버트 푸홀스가 아니었다면, 만장일치였을 정도로 보토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캐나다 출신으로는 래리 워커(은퇴)와 저스틴 모노(미네소타 트위슨)에 이어 3번째 MVP 수상이었다.



● ‘빅 레드 머신’의 선봉장

2011년 1월 레즈는 팀의 간판스타로 성장한 보토와 3년 3800만달러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 해 정규시즌 162경기 중 단 1경기만 결장했을 정도로 보토가 레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타율 0.309를 기록한 보토는 103타점을 올려 데이브 파커(1985∼1986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100타점 이상을 올린 레즈 선수가 됐다. 홈런 1개가 부족해 2년 연속 30홈런을 치지는 못했지만, 2번째 올스타와 생애 첫 골드글러브 수상이 이력에 더해졌다.

빅리그 최고의 타자로 성장한 보토가 불과 2년 후 FA로 풀리게 될 것을 걱정한 레즈 구단은 2012년 4월 10년 2억2500만달러의 조건으로 계약연장에 합의했다. 기존 계약까지 포함하면 12년 2억5150만달러가 되는 셈이다.

3년 연속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뽑히며 상종가를 치던 보토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2012년 6월 30일 경기 도중 3루로 슬라이딩을 하다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부상으로 111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타율 0.337, 출루율 0.474, 장타율 0.567 등에서 리그 선두권을 유지했다.

아직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지만 2013년 제3회 WBC에서도 보토는 기꺼이 조국의 부름에 응했다. 상대의 집중 견제로 타율 0.222에 그치며 팀의 2라운드 진출을 이끌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어쩌면 추신수가 보토와 함께 뛰는 것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공산이 크다. 메이저리그 출루율 1위 보토와 4위 추신수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레즈는 우승 후보다운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현역 선수 중 가장 완벽한 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토.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가득 채우고 있는 홈 팬들은 그가 1990년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레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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