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은이 13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경보 20km 결승이 열렸다. 저변이 약한 한국여자경보를 이끌어가는 그는 혼신을 다해 레이스를 펼쳤지만,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는 전영은. 모스크바|전영희 기자
검게 그을린 피부·발톱 빠진 발가락
“그래도 경보에 뛰어든 것 후회 없어”
국내 일반부 선수 6∼8명 저변 취약
내년 인천AG 메달 향해 외로운 걸음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46)의 발은 옹이처럼 튀어나온 뼈마디로 유명하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9·연세대)의 콤플렉스 역시 ‘못난이 발’이다. 아름다워야 하기에 더 투박해질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발. 꿈을 위해 걷고, 또 걷는 여자경보선수들도 마찬가지다.
● 남들 다하는 ‘페디큐어’가 꿈인 여자
13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스타디움 인근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경보 20km. 결승선을 통과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전영은(25·부천시청)은 “발네일아트(페디큐어)가 소원”이라고 했다. 하루 최대 25km를 전력으로 걷다보면, 발톱에까지 충격이 전달되기 마련. 그녀의 엄지발톱은 이미 오래전에 빠져버렸다. 한창 예뻐 보이고 싶은 20대. 슬리퍼를 신을 때면, 삐져나온 발톱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56cm의 마른 체형. 가녀린 팔은 햇볕에 그을린 흔적으로 가득했다. 또래의 여성들과는 달리, 포기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경보선수니까 괜찮다. 그래도 선크림(자외선차단제)도 바르고, 나름대로 관리는 한다. 경보 시작한 것을 후회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작은 키에 대해서도 “더 노력하면 된다. 위축되지는 않는다”며 웃어넘겼다.
● 독해야 산다!…유일한 취미는 야간훈련
이번 대회 전영은의 기록은 1시간34분29초(40위). 참가선수 62명 중 중·하위권이지만, 그녀는 “만족스러운 기록”이라고 했다. 2012년 10월 전국체전(1시간33분59초·개인최고기록)에 이어 2번째로 빠른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이다. 일반부 선수가 6∼8명밖에 되지 않는 한국경보의 척박한 토양에서 이뤄낸 성과다. 전영은은 “혼자서 25km씩 거리주 훈련을 할 때면 외롭다. 지원이 많아져서 선수층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여자경보 20km는 선수들이 극한의 상황을 체험하는 종목이다. 그녀는 “레이스 도중에는 정신 줄을 놓고 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운동을 하려면 마음을 더 독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내 장점은 정신력”이라고 말하는 전영은은 이제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겨냥하고 있다. 레이스 후반부에 미는 힘만 보완하면 메달권 진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목표를 향해 쉼 없이 걸음을 옮기는 그녀는 유일한 취미조차 야간훈련일 정도로 ‘독종’이다.
한편 여자경보 20km에선 옐레나 라시마노바(1시간27분08초), 아니샤 키르디야프키나(1시간27분11초·이상 러시아), 류훙(1시간28분10초·중국)이 각각 금·은·동메달을 차지했다.
모스크바|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