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가수 데뷔. 언뜻 생각하기에 평소 음악에 취미가 있던 의사가 여유로움 속에 자아실현을 위해, 아니면 인생의 기념품을 위해 앨범을 제작했다는 해석이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박소연에게 음악은, 취미나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십수 년간 거스르고 살았던 운명이었다. 특히 그녀를 음악으로 이끈 사람은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이영훈 작곡가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박소연은 서울 예원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는 성악을 전공했다. 하지만 합격이 당연시됐던 대학입시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한 후 그녀는 “이런 세상에서 앞으로 음악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이틀을 고민하다 치의대 진학을 결심, 재수 끝에 연세대 치의대에 진학했다.
졸업후에는 강원도 강릉에 병원을 개업하고 의사로 살았다. 15년간 치과의사로 충실하게, 또 치열하게 살던 박소연이 우연히 정신분석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의 내면 안에 새로운 모습이 있음을 깨달았다.
“2년간 상담을 받으면서 내면의 나, 무의식의 나를 하나씩 꺼내보는 과정이 있었는데, 내가 ‘나’라고 믿고 있었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벗겨질 때마다 아팠지만 이상하게 편안해지더군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그리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음악인으로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때가 서른여섯. 어떻게 할줄 모르고 막막해하던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작곡가 이영훈을 운명처럼 만났다. 이후 2년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음악이야기를 했고, 이영훈은 “음악에 대한 동기가 순수하다”며 두 번의 오디션 끝에 음반을 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박소연이 한창 음반 준비를 하던 중 이영훈에게 대장암이 발병했다. 그렇지만 이영훈은 투병 중에도 자신의 음악노트를 꺼내 박소연과 한 곡씩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 13곡을 골라냈다.
13곡 중 6곡은 2007년 발표한 박소연 1집 ‘별과 바람의 노래’에 수록했고, 최근 발표한 미니앨범 ‘별과 바람의 노래2’에 1곡을 담았다.
그리고 남은 6곡도 차근차근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미니 앨범에 담긴 신곡 ‘지난풍경’은 이영훈이 생전에 직접 부르고 싶어 아껴뒀던 곡이다.
박소연은 치과의사와 가수가 서로 ‘엮이는’ 것을 경계했다. ‘치과가수’란 타이틀로 화제를 모으는 것도 원치 않고, 가수로 치과를 홍보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고 했다.
“음악은 내 삶의 한부분입니다. 음악이 내 안에 없을 때 마음이 아팠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 떠나고 싶지 않아요.”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