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기자의와인다이어리]향과맛만으로와인을맞히는남자,안드레아라송

입력 2009-09-07 1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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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소믈리에는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것처럼 와인의 향과 맛만 보고서 그 와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맞힐 수 있을까.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궁금증이 있을 터다. 과연 만화와 현실은 얼마나 다를까, 정말 만화처럼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을 맞히는 일이 가능할까 등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07년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안드레아 라송(37)이 지난달 26일 한국을 찾았다. 호주 바로사 4대 와이너리 중 하나인 피터 르만(Peter Lehmann)의 와인을 들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와인&다인 행사에 참석한 그를 행사 전 만났다.

1999년 스웨덴에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딴 안드레아 라송은 불과 2년 만인 2001년 스웨덴 소믈리에 대회에 나가 처녀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덜컥 우승을 차지했다. 와인에 관심을 가진 지 고작 4년 만에 이룬 쾌거다.

하지만 이는 와인에 대한 그의 무한한 능력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2003년까지 연달아 대회에 나가 3년 연속 스웨덴 최고 소믈리에로 인정받았고, 2004년에는 유럽 베스트 소믈리에 자리까지 차지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싹쓸이하며 실패를 몰랐던 그가 첫 고배를 든 건 유럽 베스트 소믈리에 자격으로 같은 해 출전한 제11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다.

“결선에 진출을 못했어요. 이전까지 대회에 나가서 한 번도 우승을 못한 적리 없었는데 충격이었죠. 좌절감에 다시는 대회에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만약 도전이 여기서 멈췄다면 라송은 현재 조그만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에게 인기를 모으는 그저 실력 있는 소믈리에 정도로 평범함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2007년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 안드레아 라송(Andreas Larsson).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도전의 문을 두드렸다.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의 특성 상 오랜 기간 재 연마에 들어갔고, 2007년 제12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왜 자신이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가 됐다고 생각할까.

“미각과 후각이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스페셜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로맨틱한 일이죠. 저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보기에는 기억력과 경험이 더 중요해요. 자신이 얼마만큼 와인에 투자하고, 노력했느냐는 부분에서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오랜 기간, 예를 들어 30년을 와인 일을 한다고 해서 그런 결과를 얻을 수는 없어요.”

라송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원래 요리사 출신이다. 1990년 스웨덴의 한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8년 가까이 요리사로 일했다. 그런데 왜 요리사에서 소믈리에가 됐을까. 돌아온 대답은 인간적이면서 솔직했다.

“셰프는 나에게 너무나 훌륭한 직업이었어요.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게다가 유명한 셰프가 되지 않는 한 입지를 세우는 일도 힘들어요. 그래서 소믈리에가 되기로 했죠.”

그렇다면 소믈리에인 현재가 요리사였을 때보다 힘이 덜 들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요리사였을 때는 소믈리에가 힘이 덜 들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다르다. 힘든 부분의 차이가 있을 뿐 직접 해보면 어느 게 더 힘들다고 얘기할 수 없단다.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 안드레아 라송이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의 과정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셰프는 재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지만 키친에서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어요. 반면 소믈리에는 손님을 직접 대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힘들어요. 소믈리에에게 중요한 두 가지가 와인과 손님을 대하는 것이라면 후자가 여전히 더 어려운 문제죠.”

와인에 대한 그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1년에 7000여종의 와인을 시음했다는 그는 세계 대회 우승 이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단 한 차례도 틀려본 적이 없단다. 와인뿐 아니라 물 까지도 정확하게 맞힌다.

마치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와인평론가 토미네 잇세 같다.

하지만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표현에 대해선 다른 생각이다. 와인을 마시고 그런 느낌이 난다는 건 자신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단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얘기다.

직업적으로 와인을 많이 접하는 라송은 ‘테이스팅’보다는 ‘드링킹’을 더 좋아한다. 보통 하루에 한 병 정도 와인을 마시는 그는 선데이 브런치를 하다 보면 매그넘(1.5리터) 보틀을 두 병 이상 마시기도 한다. 그렇게 마시는 와인이 더욱 즐겁다.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일본인 타사키 신야의 경우 1년에 2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부와 명예를 획득했다.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가 된 이후 라송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대답은 짧지만 명확했다. “일은 더 많이 하고, 잠은 더 적게 자요.”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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