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실제 야구부에 가다] 콜 플레이 못해 뜬공 잡다 아찔한 충돌

입력 2011-0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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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열정은 영하의 추위를 녹였다. 가슴으로 내뱉는 파이팅 소리는 음량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21일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의 당찬 모습.

영화 ‘글러브’의 실제 주인공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에 가다

함께 뒹굴며 알게된 협동·희생의 팀워크
청각장애 최초 프로선수…목표도 한마음
3월 주말리그 출전 9년 만에 1승 부푼꿈
‘불가능하다’는 편견에 도전하는 이들은 아름답다.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는 정규 야구대회에 출전하는 국내 유일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이다. 영화 ‘글러브’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이들은 2002년 9월 당시 57번째 고교팀으로 창단돼 9년째 그라운드에서 목소리 대신 서로의 눈빛으로 팀워크를 다져가고 있다.

동계훈련이 한창인 21일 충주 야구장에서 성심학교 야구부를 만났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야구부의 이야기, 창단부터 야구부를 이끄는 감독과 팀 매니저가 바라는 꿈을 들어봤다. 청각 없는 야구가 힘들지만 탁월한 보상감각 덕분에 ‘다른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경험담을 통해 담았다.

고득원·고득화 형제는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의 유일한 형제 선수다. 포지션은 투수와 타자. 바닷가를 향한 하릴없는 돌팔매질이 형제를 야구부로 이끌었다.

형제의 고향은 거제도다. 성심학교가 현장학습으로 찾은 거제도의 한 바닷가에서 이 학교 야구부장인 박정석 교사는 바다에 뜬 배를 향해 기막힌 적중률로 돌을 던지던 고득원(14) 군을 발견했다.

야구선수냐고 물어도 고 군은 말이 없었다. 박 교사는 직감으로 청각장애인임을 눈치챘고 부모를 설득해 야구부로 스카우트했다. 동생 고득화 군도 함께였다.

“형제를 키우던 할머니가 아이들 신발까지 숨겼어요. 집 못 떠난다고요. 특수반도 없는 일반 학교에 다니던 형제는 놀림 받던 외톨이였지만 지금은 야구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박정석 교사)”

에이스 포수 서길원(16) 군은 반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다. 그의 목표는 조인성(LG) 같은 포수다. 혹한에도 매일 6시간 씩 야외 훈련을 하는 서 군은 “힘들지 않다”며 “최초의 청각장애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손으로’ 말했다.


○“음지의 아이들 양지로 끌어내 제도권으로…”

성심학교 야구부는 쓰레기매립장을 임대해 만든 충주 야구장에서 동계 훈련에 한창이다. 프로야구 1호 선수 탄생을 위해 소리 없는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봉황대기만 놓고 보면 팀의 전적은 여섯 번 출전해 전패. 연습 경기에서 이긴 적도 있고 홈런을 치기도 했지만 현실의 벽은 견고했다.

창단부터 야구부의 살림을 도맡은 박정석 교사는 “야구를 하지 않으려고 들면 안할 이유는 정말 많다”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보상감각 덕분에 보는 눈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이 학교 중·고등학생의 수는 76명. 남학생 37명 가운데 23명이 야구부에서 뛴다. 야구부에는 전교 1등도 있고 장학금을 받는 학생도 4명이나 된다. 한 번 본 건 그대로 머리 속에 담아두는 눈썰미도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다.

성심학교가 돈 많이 드는 야구부를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청각장애인들이 쉽게 하지 못했던 스포츠였고, 야구란 단체 운동을 통해 협동과 희생을 배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야구부가 생기고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평범한 또래보다 더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는 이곳 아이들은 게임 중독에 쉽게 빠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집중할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10년째 야구부를 이끄는 박상수 감독은 “졸업생이 30만원을 들고 와 후배들 고기 사주라고 하고 새 유니폼을 아껴뒀다가 후배에게 주기도 한다”며 “음지의 아이들을 양지로 끌어내 제도권으로 넣어주는 게 야구부의 몫”이라고 했다.


○성심학교 야구부가 뽑은 인기 1위는 추신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추신수(클리브랜드)다. 야구부에도 추신수와 등번호가 같은 17번 문형섭(16) 군이 있다. “폼만 추신수”라고 불리는 그는 얼마 전 팀을 이탈해 호된 꾸지람을 들은 사춘기 소년이지만 야구에 관해서는 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욕심도 있다.

현재 전국에 청각장애인 학교는 20여 곳. 그 중 전교생이 100명 이상인 곳은 10여 개다. 박정석 교사는 “여러 학교에서 운동 감각이 있는 학생들이 야구부로 모인다면 일반 야구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출 것”이라며 “‘언제 1승 하는지 지켜보자’는 시선보다 응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심학교 야구부는 3월27일 시작하는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앞두고 있다. 5월말까지 다섯 경기를 치르고 7월까지 또 다시 일곱 경기를 소화한다. 이들은 9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대회 1승의 꿈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앞두고 있다.

충주|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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