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실제 야구부에 가다] 듣지 못한다고? ‘야구 눈썰미’는 최고!

입력 2011-0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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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는다.’ 성심학교 박상수(뒤) 감독은 펑고를 칠 때, 포수 서길원을 통해 야수들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엉성한 플레이에 박 감독이 보내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 순간 그라운드는 웃음바다가 됐다.

놀라운 ‘보상 감각’
타구음 듣지못해 수비동작 늦지만
잃어버린 청각 대신 시각 발달
이승엽·김현수 폼 한번보면 ‘척척’
헬렌 켈러는 “시각장애보다 청각장애가 더 불행하다”고 썼다. 사고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극인 ‘언어’감각이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심학교 서문은경 선생님은 “아기가 ‘엄마’라는 소리를 3000번 들어야 ‘엄마’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구강구조에 문제가 없어도, 듣지 못하면 말하기도 힘들어진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삶과 야구는 고요하기만 하다.


○듣지 못하는 삶이란…

성심학교 박상수 감독은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이런 방법을 써보라”고 했다. 걸그룹의 춤과 노래가 TV에 나온다. 볼륨을 줄여봤다. 그리고 음 소거 버튼을 눌렀다. 막막하다. 흥도 나지 않는다. 과연 아이유의 3단 고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에피소드들도 있다. 씻고 나서 머리를 말린 뒤, 헤어드라이기 전원을 끄지 않고 가는 선수들이 있었다. 진공청소기의 플러그가 빠진 줄도 모르고, 숙소 구석구석을 누비는 경우도 같은 이유다.

박 감독은 “숙소 방문도 열어둔다”고 했다. 사고 상황에서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선수들이 감독 몰래 숙소 어딘가에 숨었는데, “킥킥” 웃다가 걸린 적도 있다. 그들은 발각의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한다.

훈련 중 돌발 상황 발생. 수비훈련 도중 한 야수가 강습타구에 맞았다. 순간 일그러진 표정. 곧이어 동료들이 다가왔다. 이들은 야구를 통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배웠다. 동료들의 걱정 덕인지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듣지 못하는 야구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청각장애선수’ 커티스 프라이드(43)는 시범경기에서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심판의 마스크를 벗긴 적도 있었다. 판정에 대해 설명하는 심판의 입 모양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상생활에서의‘차이’는 야구에도 투영된다. 어중간한 플라이 때 콜플레이가 될 리 없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야수끼리 부딪히는 경우도 잦다. 타구음을 듣지 못해 소위 ‘만세 부르는’경우도 있다. 딱 맞는 순간 경쾌한 소리가 나면 일단 뒤로 물러서야하지만, 타구판단이 늦다.


○눈썰미는 최고…ML서는 청각장애 도루왕도

그렇다고 마냥 불리하기만 할까. 박 감독은 “보상감각”이라는 말을 꺼냈다. “청각을 잃은 대신, 시각이 발달한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눈썰미가 빼어나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한번 마주친 사람도 잘 기억해내고 선수들의 폼도 잘 흉내 낸다.

성심학교에서 한 때는 이승엽(오릭스)의 타격폼이 유행이었다. 성심학교를 매년 후원하는 김현수(두산) 역시 ‘모방’의 대상이다. 한 번은 성심학교 선수들이 김현수의 초청으로 잠실에 갔는데, 마음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화가 난 김현수가 배트를 집어 던졌다. 박 감독은 “다음 날 훈련 때 보니, 선수들이 이 동작까지도 모두 따라했다”며 웃었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최근 박정태(롯데2군감독) 같이 기이한 폼을 지닌 선수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눈썰미로 상대의 ‘버릇’을 잘 파악하는 선수도 있다. 2005년 성심학교의 황금기 때 뛰었던 그 선수는 변화구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냈다. 워낙 발이 빠른데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도루시도를 하니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결국 박 감독은 그린라이트를 부여했다. 대도들은 “도루는 다리가 아닌 눈으로 한다”고 말한다.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활약한 ‘청각장애선수’ 더미 호이(1862∼1961) 역시 통산 2048안타에 596도루를 기록했고, 1888년 내셔널리그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박 감독은 “콤비플레이가 많은 내야수는 좀 힘들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투수나 외야수 등은 프로 선수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농아인 인구는 약 30만으로 추산된다. 그 중 선동열과 같은 어깨를 지닌 선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현역 중에도 ‘Silent K’라는 별명을 지닌 이시이 유야(30·니혼햄)라는 청각장애투수가 있다.

충주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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