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3할타자’ 장효조,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입력 2011-09-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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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세상을 떠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의 생전 모습.스포츠동아DB.

자기전에도 방망이 잡던 프로근성
아직 후배들에게 가르칠것 많은데
이렇게 가다니…야구계 깊은 슬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야구인들이 말하는 ‘야구선수 장효조’

한국 야구계의 큰 별이 졌다.

‘타격천재’, ‘영원한 3할 타자’로 불렸던 삼성 장효조 2군 감독이 7일, 55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지난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한국프로야구 30주년 기념 레전드 올스타’로 선정돼 멋진 수트를 입고 예전 그대로의 카리스마를 뽐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아냈던 고인은 이후 위암과 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고 약 한 달간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각 구장은 물론 야구계 전반은 굳은 침묵 속에 깊은 슬픔에 빠져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고인의 모습을 통해 ‘야구 선수 장효조’를 되돌아 본다.

고인의 빈소는 부산 동아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9일 오전 9시에 열린다.

1989년 롯데로 이적한 뒤 장효조. 스포츠동아DB.



○SK 이만수 감독대행=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살아 잘 알던 선배였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어릴 때부터 야구 천재였던 선배 집에 새벽에 불쑥 찾아가서 조언 얻으려다 한대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중학교부터 프로까지 직속 선배라 따르고 의지했다.

프로에서도 얼마 전까지 같이 2군 감독으로 퓨처스 올스타전에 함께 했고, 레전드 올스타 때도 가족끼리 만났는데 이렇게 되다니…. 선배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자존심이 정말 셌던 분이다. 삼성병원에 계실 때 가 본다고 했더니 ‘오지마라’면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다. 대한민국 최고타자, 천재타자였다.


○넥센 김시진 감독=방망이에 유난히 욕심이 많았다. 언젠가 집에 가보니 안방에 햇빛을 가리기 위해 커튼까지 쳐 놓고 벽에 못을 박아 방망이를 말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방망이에 4월에 쓸 방망이, 7월에 쓸 방망이 등을 다 써놓았을 정도로 치밀했던 분이다.

일본 캠프에 갔을 때도 방망이 업자들이 오면 아무도 못 오게 해서 자기가 먼저 방망이 다 고르고, 그 다음에 이만수 등 다른 타자들이 고르게 할 정도로 방망이 욕심이 유난히 남달랐다. 룸메이트 때 조금만 부진하면 맥주를 마시다가도 침대를 한쪽으로 다 밀어놓고 웃통 벗은 채 배트를 휘두른 뒤 잠이 들었던 분이었다.


○LG 박종훈 감독=대학시절 대표팀에 함께 뽑혀 대만으로 캠프를 떠났는데 마침 룸메이트였다. 그때도 방망이를 놓지 않았다. 밖에서 보여주지 않고 방안에서 계속 스윙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타고난 것과 더불어 노력이 대단해서 그 열정을 배웠다.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너무 안타깝다. 타격쪽에서 후배들에게 축적된 노하우를 많이 전수하실 수 있는 분이었는데…. 내가 후배로서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 드리지 못해 안타깝다.


○두산 김광수 감독대행=타격의 달인이었다. 선구안이 좋고 컨택트 능력도 빼어났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정확도가 대단했다. 내가 2루수를 봐서 아는 데 1∼2루간을 꿰뚫는 타구 속도는 현재까지도 가장 빠를 것이다. 그만큼 배트스피드가 빨랐다.

지난 7월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프로야구 30년 레전드 올스타에 선정돼 리무진을 타고 입장한 장효조. 이때가 팬들 앞에 선 마지막 순간이었다. 스포츠동아DB.



○두산 신경식 타격코치=선구안, 정확성, 상황별 타격이 최고였다. 2안타 1볼넷이 당연한 일일 정도로 타격 능력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만약 그날 1안타를 치더라도 꼭 2볼넷을 골라나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타율 관리를 철저히 하는 진정한 프로였다.


○삼성 채태인=한달 전까지 건강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가르쳐주셨는데 내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선천적으로 타고 난 타자였다. 배트 스피드 하나만으로 잠실구장 외야 최상단에 타구를 날릴 정도로 장타력도 갖춘 선수였다. 심판들이 교본으로 삼았던 선수가 투수는 이상군, 타자는 장효조였다.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고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은? (1956년 7월6일∼2011년 9월 7일)

▲출신교=삼덕초∼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
▲통산성적=1979년 실업야구 포항제철 입단 후 1980∼1982년 경리단에서 복무,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참가 후 1983년 삼성으로 프로데뷔 1989년 롯데 이적 후 1992년 은퇴. 프로 통산 961경기 3050타수 1009안타 타율 0.331, 54홈런, 437타점
▲1985∼1987년 3년연속 타격 1위 포함 4회 타격왕, 외야수 골든글러브 5회, 1987년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
▲지도자경력=1992년 롯데 타격코치∼1999년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 연수∼2000년 삼성 코치∼2011년 삼성 2군 감독

[스포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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