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국가대표 인디 노브레인 “아이유, 십센치, 감사합니다!”

입력 2011-12-23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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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멤버 문제가 더 힘들다
●인디는 이제 동정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
●밴드여, 오버의 꽃향기를 맡아라


"15년 사이 변한 거? 목욕탕에서 제 하반신에 관심을 갖고 뚫어져라 보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죠(웃음)."(이성우)

1996년 결성한 뒤 1999년, '조선펑크'를 주창하며 '청년폭도맹진가'로 한국 가요계에 충격을 던졌던 록밴드 노브레인(이성우, 정민준, 황현성, 정우용)이 어느덧 결성 15주년을 맞았다.

새빨간 머리로 상의를 벗어젖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리더 이성우(36)는 이제 30대 중반이 됐다.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고 '맨땅에 헤딩'하며 '사정없이 사정하리라'던('청춘98') 노브레인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밴드가 됐다.

▶'인디밴드' 노브레인에게 홍대란?

노브레인을 만난 곳은 '마음의 고향' 홍익대 근처의 한 카페. 뒤편에는 3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이 딸려 있었다.

"사람 없는 곳에서 공연하는 거야 익숙하죠. 1000석 짜리 공연장에 20명 앉아있는 그런 일은 흔했거든요. 공연 자체가 좋았으니까."(이성우)

"홍대에서 공연하면 집처럼 편안해요. 관객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 막 어깨동무 하고 싶고. 회사에서 '홍대 공연 당분간 쉬자'라고 해서 싸운 적도 있어요."(정민준)

한때 '홍대'라고 하면 '가난하고 지저분한 예술인의 거리'를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밴드들은 곰팡이 낀 지하실에서 낡은 기타를 안고 연습했다. 당시 노브레인은 '말 달리자'의 크라잉 넛과 더불어 시대의 젊음을 절규에 담아 분출했다.

하지만 지금 홍대는 잘 가꿔진 카페와 단정한 음식점들로 꾸며진, 과거와는 다른 '젊음의 거리'가 됐다. 노브레인은 "과거의 홍대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도 분명 있다"면서도 "바뀐 덕분에 홍대 밴드들이 유명해진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인디밴드는 저희 때처럼 막 힘들고 삶에 찌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 하는 맘 편한 느낌? 저희 때 밴드는 동정의 대상이었는데, 이젠 자기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동경의 대상이잖아요. 환경이 좋아진 거죠."(정민준)


▶변화, 그리고 비난

홍대와 마찬가지로 노브레인도 바뀌었다. 노브레인은 2004년 발표한 '넌 내게 반했어'를 통해 인기 밴드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 때문에 '조선 펑크는 어디로 갔나', '노브레인이 변했다'라는 비판에 시달리게 됐다.

멤버 교체도 겪었다. 15년간 노브레인을 지켜온 '원년 멤버'는 이제 보컬 이성우와 드러머 황현성 뿐이다. 2007년 정우용이 합류하면서 현재의 멤버가 완성됐다. 이성우는 "이렇게 멤버에 아무 일 없이 지내 본 건 정말 오랜만"이라며 "돈 못 버는 거보다 멤버 문제가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제가 생각해도 노브레인은 과거와는 다른 밴드가 됐어요. 요즘 전 악플 이겨내는 방법을 주변 밴드들에게 알려주고 삽니다. 뮤지션에게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데, 관심이야 늘 감사하지만 록팬들은 너무 채찍만 휘두르시는 것 같아요. 고급 외제차 탄다, 비싼 기타 쓴다 다 구설수에 오르거든요. (신)해철이 형이 '메탈리카는 한국에 전세기 타고 오는데, 난 BMW 타면 안 되냐'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공감해요."(이성우)

노브레인이 본격적으로 남녀노소를 아우른 국민 밴드가 된 것은 2006년의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디 정신을 잃었다'라는 비난이 이들을 향했다. "록밴드가 공연이 아닌 영화로 팬들과 만났다", "인디 밴드가 거대 자본이 투자된 영화에 참여했다" 등이 이유였다.

노브레인은 예능프로그램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브레인은 2009년, MBC '무한도전-올림픽대로가요제'에서 노홍철과 팀을 이뤄 '더위 먹은 갈매기'를 불렀다. 이성우는 "당시에는 그냥 공연 레퍼토리가 하나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재방송을 진짜 많이 해서 유명세에도 도움이 됐다"며 "요즘도 '무한도전 나온 거 봤다'는 연락이 가끔 온다"고 했다.

"명색이 록밴드인데 무대가 아닌 스크린과 TV로 음악을 들려준다는 게 실망스러우셨나 봐요. 하지만 저희는 저희 노래를 많이 들려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밴드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문을 열어두고 싶었거든요."(정민준)

최근에는 한 방송에서 아이돌과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이들은 "메이저이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며 "인디밴드도 메이저에서 소외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요즘 오버의 꽃향기가 두근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인디밴드도 사람이에요. 씨스타 보라는 정말 예쁘더라고요."(정민준)"메이저가 나쁜 게 아니에요. 인디는 좋은 거, 메이저는 나쁜 거, 이렇게 나누는 게 문제죠."(정우용)

▶TV로 나온 밴드, '탑밴드'

얼마 전 끝난 KBS 밴드서바이벌 'Top(톱)밴드'는 노브레인에게도 소중한 기억이다. 노브레인은 브로큰 발렌타인, 아이씨사이다 등 제자들을 이끄는 코치로 참여했다. 방송 당시 노브레인은 체리필터로부터 "브로큰 발렌타인에게 오히려 배워야 되는 밴드"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에 대해 노브레인은 씩 웃으며 "방송 참 열심히 하신다고 생각했다"며 "신경 쓰지 않았다"고 답했다.

"톱밴드의 놀라운 점은 게이트 플라워즈 같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정통 록밴드가 큰 환호를 받았다는 거였죠. 우리 팀 떨어뜨리지만 않았어도 더 좋아했을 텐데."(이성우)

아이씨사이다는 게이트플라워즈, 브로큰 발렌타인은 톡식이라는 강력한 우승후보를 일찌감치 만나 패했다. 노브레인은 제자들에 대해 "브로큰 발렌타인은 기대고 싶을 만큼 존경하는 후배, 아이씨사이다는 에너지 넘치는 강렬한 밴드"라며 "떨어졌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얼마 전 '오버 더 탑(over the top)'이라는 공연을 함께 했다.

탑밴드 우승팀 톡식은 자체 인디기획사 DMZ를 설립하며 "인디밴드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대형 기획사 갈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줘도 못 받아먹는다"는 비난과 "역시 인디 정신이 살아있다"라는 평가가 교차했다.

"사실 버스커버스커보다 톡식 같은 밴드가 더 인기 있어야 되는데… 신데렐라보다는 오래 갈 팀을 뽑아야죠. 톡식은 인기 많으니까 메이저 갔으면 인디 버린다고 욕먹었을 거예요. 본인들 판단을 존중해야죠. 어차피 망해도 걔들이 망하는 거고 뭐(웃음)."(이성우)

노브레인은 오는 24일, 15주년 기념 콘서트 'ㅋㅋㅋ'를 갖는다. 지난 2일에는 후배 밴드 고고스타와 크리스마스 캐럴 음원도 냈다.

"'변했다'는 말은 항상 듣던 말이라 이젠 지겨워요. 변했다 실망했다 말하기는 쉽죠. 그런데 이제 예전엔 춤추고 랩 하려던 사람들이 요즘은 기타를 치잖아요. 예전엔 아웃사이더로서의 쾌감이 있었는데, 요즘은 파티투게더의 쾌감이 있어요. 아이유와 십센치(10cm), 감사합니다!"(이성우)

글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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