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의 법칙] 차승원, ‘예능의 늪’에 갇히다!

입력 2016-10-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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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승원이 또 한 번 쓰린 속을 삼켰다. 안방극장에서 승승장구해온 것과 달리 ‘하이힐’에 이어 ‘고산자, 대동여지도’까지 스크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연기력 논란이 없는 배우인 데다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를 잘했기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12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차승원 원톱 주연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누적관객수 96만7902명(박스오피스 74위)을 기록했다. 지난달 7일 개봉해 한달 이상 극장가에 머무른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최근 1주일동안 10개 이하의 스크린을 통해 하루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1735명까지 관객을 모았다. 그러나 13일 ‘럭키’ ‘춘몽’ ‘우주의 크리스마스’ 등 신작이 대거 개봉하면서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확보했던 한 자리수 상영관도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진 상황. 결국 이 작품은 손익분기점 320만 명은커녕 100만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쓸쓸히 스크린을 떠나게 됐다. 추석 연휴에 맞춘 개봉 시기를 볼 때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미천한 신분으로 시대와 권력에 맞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대동여지도’를 탄생시킨 지도꾼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신라의 달밤’ ‘선생 김봉두’와 ‘혈의 누’ 등에서 기획자와 배우로 다수의 작품을 함께한 강우석 감독과 차승원이 연출자와 배우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강우석 감독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위해 9개월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아름다운 비경을 담아냈다. ‘지도쟁이’ 김정호 선생의 발자취를 표현하기 위해 최남단 마라도부터 최북단 백두산까지 대장정을 펼쳤다. 황매산의 봄을 촬영하기 위해 꽃이 필 때까지 5개월 동안 기다리는 노력을 쏟았다. 특히 북한강 촬영의 경우 얼음이 얼기 전에 미리 배를 띄워 강과 얼어버린 배의 모습을 완성했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은 그렇게 디테일까지 공들여 촬영한 영상을 초반 20분 오프닝 시퀀스로 다 써 버렸다. 압도적인 영상미 이후에 그려진 인물들의 갈등은 상대적으로 그 힘이 약했고 늘어지는 전개는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또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실존인물 김정호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차승원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다. 앞서 차승원은 사료에도 기록이 거의 없는 김정호 선생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여러 차례 털어놨다. 그는 “그럼에도 역사 속 인물을 따라 그를 쫓아가는 영화에 참여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았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차승원이 계획한 김정호 선생은 지도 외적인 면에서는 헐렁하고 살가운, 인간미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은 인물을 훼손시키지 않고, 경외감을 느낄만한 인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이렇게 상반된 캐릭터 해석은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승원은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잘 맞았지만 감독님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완성본은 감독님이 의도한 대로 나온 것 같다”고 털어놨다.


캐릭터를 두고 이견을 보인 가운데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차승원의 ‘삼시세끼’ 이미지를 영화에 옮겨왔다. “나 요리 잘해. 내가 삼시세끼 다 해줄 수도 있는데” “역시 나는 톱질은 안 맞아” 등 ‘삼시세끼’를 떠오르게 하는 대사가 찰나에 등장했다. 깨알 재미를 위해서였겠지만 김정호 선생을 스크린에 환생케 하는 과정에서 ‘삼시세끼’ 이미지 차용은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삼시세끼를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차승원은 더 이상 김정호 선생이 아니라 ‘차줌마’였다. 왠지 화면 어딘가에 나영석 PD가 웃고 있을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강우석 감독은 앞서 인터뷰에서 “‘삼시세끼’ 대사가 재밌게 들릴 것 같았다.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에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동의를 구할 때 차승원도 오케이 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선생은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로 표현됐다. 대동여지도를 만들 위해 숭고한 고행의 길을 걸은 위인도,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인간미 넘치는 아버지도 아닌 채 남았다. 그렇다고 ‘삼시세끼’ 같은 코믹한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역사 왜곡 논란과 루즈한 전개, 과한 ‘국뽕’과 더불어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관객에게 외면 받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다시 강조하지만 흥행 실패 원인을 차승원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그 어떤 배우가 맡았더라도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승원에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차승원이 모든 것을 이끌고 가야 하는 원톱 영화이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했다. 김정호가 아닌 ‘차줌마’가 보였다면 그것도 그의 잘못이다. ‘삼시세끼’가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분명하나, 코믹한 이미지가 굳어지면 배우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차승원이 출연한 최근 작품은 모두 사극이었다. 드라마 ‘화정‘이 방송될 때는 곤룡포를 입고 코믹한 광고를 찍었다.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도 코믹한 이미지를 지울 필요가 있었다.

더 안타까운 건 차승원이 그 어떤 배우보다 역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평소 역사 관련 서적을 즐겨 읽을 정도다. YG의 한 관계자는 동아닷컴에 “차승원은 지인들과 역사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만큼 역사를 좋아한다. 사극에 캐스팅 되면 좋은 연기를 위해 역사 속 인물과 관련된 서적을 구입해 읽을 정도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누구보다 역사를 좋아하기에 그가 출연한 사극들이 꼭 성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승원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마친 후 현재 휴식을 취하고 있다. 드라마도 영화도 예능도 접고 “일상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본업(?)에서의 부진했던 이유를 차승원이 이미 찾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DB,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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