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는 순간까지 오직 연기만 생각한 김영애

입력 2017-04-1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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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故 김영애. 동아닷컴DB

■ 췌장암 별세…마지막까지 연기 열정

유작이 된 ‘월계수 양복점’ 진통제 투혼
주위 만류에도 “끝까지 연기” 강한 의지
최근 ‘해품달’ ‘닥터스’ 등 제2의 전성기
“일흔 되어서도 여배우” 꿈 남기고 떠나

47년 동안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대배우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오직 연기만을 생각했다. 다시 살아난 암세포가 극심한 고통으로 옥죄는 상황에서도 시청자와 나눈 약속을 지키려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췌장암 항암치료조차 받기 어려운 몸은 진통제로 버텼다. 9일 오전 66년의 삶을 마감한 배우 김영애의 열정이다.<스포츠동아 9일 단독보도>

고 김영애의 마지막 무대는 2월 말 막을 내린 KBS 2TV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다. 지난해 8월27일 첫 방송부터 당초 계획된 마지막 방송인 2월12일까지 7개월 동안 고인은 한 회도 빠짐없이 출연했다. 사실 드라마 출연을 결정할 즈음 췌장암이 재발해 상태가 악화한 상황이었다. 고인은 주위의 만류에도 “끝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 투병의 아픔과 고통

하지만 체력적인 한계 탓에 결국 촬영을 시작하고 두 달여가 지난 뒤부터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의료진은 물론 제작진과 가족까지 드라마 출연을 중단할 것을 권했지만 연기를 향한 고인의 단호한 의지는 끝내 꺾지 못했다. 이후 입원한 상태로 촬영 당일 세트가 있는 서울 여의도 KBS 별관으로 향해 녹화를 진행한 뒤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4개월 여 동안 이어갔다.

김영애는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 도중 췌장암을 발견했다. 하지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예정대로 마무리했다. 이후 고인은 한 방송에 출연해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음을 공개하며 “촬영 때 고통을 줄이기 위해 허리에 끈을 조여 매고 버텼다”고 말하기도 했다.

“뜨거운 열정,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제작 관계자는 9일 “고인은 촬영 내내 단 한 번도 대사를 외워오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고 주어진 일을 해냈다”며 “제작진 누구도 고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신구와 차인표, 라미란 등 동료들도 김영애의 아픔을 몰랐던 바 아니지만 누구도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혹시 외부로 알려져 부담을 줄까봐 더 조심했다. 무엇보다 연기를 향한 김영애의 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공감했기에 서로 뜻을 모았다.

“그 뜨거운 열정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는 이들은 드라마 종영 후 각종 인터뷰에서 고인에 대해 한결같이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고.

그만큼 김영애는 생전 오로지 연기 하나만 생각했다. 암과 싸울 때도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았다. 출연 분량이 적어도 그저 “존재감 있는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시도 캐릭터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덕분에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대기업의 회장,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할머니 등 사극과 현대극, 시대극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청자나 관객에게 강한 통쾌감을 안겨주는 캐릭터를 만나면 “도전 욕구가 생긴다”는 그였다.


● 47년의 연기 인생 마감하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영애는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후 ‘청춘의 덫’, ‘엄마 좋아 아빠 좋아’, ‘왕룽일가’, ‘순심이’, ‘빙점’, ‘형제의 강’, ‘모래시계’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뿐만 아니라 흥행 파워까지 자랑했다. ‘황진이’, ‘아테나’를 통해서는 대중적으로 더 활발히 움직였다. 스크린에서는 ‘상감마마 미워요’를 시작으로 ‘섬개구리 만세’, ‘설국’, ‘깃발 없는 기수’, ‘미워도 다시 한번’, ‘겨울나그네’ 등으로 관객과 만났다.

최근에는 MBC ‘해를 품은 달’, ‘킬미 힐미’ SBS ‘닥터스’ 등을 내놓기도 했고, 영화 ‘애자’, ‘변호인’,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판도라’ 등에서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2000년 황토팩 사업을 시작, 큰 성공을 거두며 사업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KBS 1TV ‘소비자고발’이 “황토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며 보도하자 큰 위기를 겪었다. 이후 법원이 “유해성이 없다”며 무죄 판결했지만 사업을 접고 배우의 삶에 집중했다.

이후 투병. 하지만 연기를 향한 의지는 더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졌다. 건강이 좋아져 촬영한 영화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던 2014년 1월 김영애는 말했다.

“여배우는 일흔이 되어서도 여배우이기에,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를 정말 잘 해내고 싶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을 외아들을 비롯한 가족이 지켜봤다. 이미 한 달여 전 의료진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당부를 전해들은 유가족은 그동안 고인과 뜻을 나누며 조용하게 마지막을 준비해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오전 11시.


■ 김영애 연보

1951년 4월21일 부산 출생, 부산여자상업고교 졸업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 데뷔
1973년 MBC ‘민비’, 영화 ‘섬개구리 만세’, 영화 ‘처녀사공’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MBC 민비)
1977년 영화 ‘설국’
1978년 MBC ‘청춘의 덫’
1979년 MBC ‘엄마 좋아 아빠 좋아’, 영화 ‘깃발 없는 기수’
1980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80’
1982년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MBC 야상곡)
1985년 MBC ‘엄마의 방’
1986년 영화 ‘겨울나그네’
1987년 영화 ‘먼 여행 긴 터널’, ‘연산일기’
1991년 KBS 1TV ‘옛날의 금잔디’
1995년 SBS ‘모래시계’
1998년 KBS 2TV ‘야망의 전설’
2000년 SBS 연기대상 최우수여자연기상·제36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상이상 (SBS 파도)
2002년 KBS 1TV ‘장희빈’
2006년 KBS 2TV ‘황진이’
2009년 제4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
2010년 제7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조연배우상(애자)
2011년 MBC ‘로열 패밀리’
2012년 MBC ‘해를 품은 달’
2013년 영화 ‘변호인’
2014년 제51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제 35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변호인)
2015년 MBC ‘킬미 힐미’, 제8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공로상
2016년 영화 ‘판도라’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KBS 2TV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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