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신의 ‘빙상의 전설’] “계주 금메달이 제일 좋아요…모두 함께 웃을 수 있잖아요”

입력 2018-02-1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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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계주 경기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남·녀 계주 결승 이끈 ‘분업의 힘’

사연 많은 맏형 곽윤기 인코스 추월 발군
준결승서 1번 역할 완수한 키다리 김도겸
엉덩방아 이유빈도 한단계 성장의 계기로
김예진, 결승전서 상대 약점 공략할 카드

● 계주 우승은 국가대표 모두의 목표


쇼트트랙은 동·하계 올림픽의 수많은 정식 종목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종목이다. 육상에 비유를 하자면 400m 단거리, 800m, 1500m 중장거리까지 오픈 코스에서 승부를 겨루고, 5000m 계주(육상엔 없는 종목이다)를 400m마다 엉덩이를 밀어주며 레이스를 벌이는 격이다. 이렇다 보니 개인 종목에서는 자국 선수 간에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계주에서는 협력하여 승리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개인전 우승은 승자와 패자가 갈려 우승을 하고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두 다 웃을 수 있는 계주 우승이 가장 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올림픽에는 선발전 순위에 따라 김도겸, 곽윤기 선수가 남자 계주멤버로, 김예진, 이유빈 선수가 여자 계주 멤버로 뛴다. 8년 만에 남녀가 함께 계주 결승전에 진출한 쇼트트랙 대표팀. 그들은 누구인가.

남자 쇼트트랙대표 곽윤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시건방춤’으로 화제 오른 빙판의 풍운아 곽윤기

수많은 쇼트트랙 선수가 있었지만, 러시아로 귀화까지 한 안현수를 빼면 곽윤기처럼 굴곡이 많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곽윤기는 2007년 신목고 3학년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이후 숱한 국제대회에서 활약했다. 200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4위에 오르며 계주 멤버로 선발되어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했다.

밴쿠버올림픽에서 그는 500m와 계주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여, 500m에서는 종합 4위에 오르고, 계주에서는 막판 뒤집기로 은메달을 따는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계주 시상식에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에 나오는 ‘시건방춤’을 춤으로써 단번에 화제의 인물이 됐다.

하지만 2010 세계선수권 대회 직후, 밴쿠버 올림픽 멤버를 선발하는 200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절친 이정수와 짬짜미를 했다는 폭로가 나오고 두 선수는 6개월간 선수 자격을 정지당했다. 휴식 기간 마음을 다잡고 맹훈련으로 자신을 담금질한 곽윤기는 2011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1위의 성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리고 2012 세계선수권에서 첫 개인종합 우승을 할 때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로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13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쇼트트랙 인생에 또다시 먹구름이 끼었다. 결국 2013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하면서 소치올림픽 출전이 무산되고 남자 대표팀은 올림픽 사상 두 번째 노메달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후 곽윤기는 국가대표팀 승선과 탈락을 반복하면서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던져줬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그는 마침내 평창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17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선전을 펼쳐 종합 4위의 성적으로 계주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표팀 최고참으로 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주 준결승전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대표팀의 결승행을 견인했다.

준결승전에서 보여주었듯이 곽윤기만의 인코스 추월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결승전에서 3번이나 4번 주자로 나설 것이 유력한 그는 오랜 경험과 농익은 기술을 살려 대한민국 대표팀의 질주를 이끌 것이다.

남자 쇼트트랙대표 김도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크림파스타를 좋아하고 FC서울팬인 ‘꺽다리’ 김도겸

김도겸은 1993년 생으로 역대 쇼트트랙 대표팀 사상 최장신인 훤칠한 키(182cm)에 다부진 체격이 인상적이지만 휴식시간엔 애완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드러운 남자다. 어릴 적 허약한 체질이어서 운동을 시작했다. 201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1,500m 은메달, 500m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2017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3위에 올라 평창올림픽 계주 티켓을 얻었다. 2017-2018 시즌 월드컵 2차 대회 500m 결승까지 올라가 5위를 차지하는 잠재력을 보여 주었고, 3차 대회에서는 같은 종목 3위에 올라 성인 무대 첫 메달을 따내는 감격을 맛봤다.

무리뉴 감독을 존경하고, FC서울의 팬이며 경기 전이나 힘들 때는 크림파스타를 즐겨 먹는다는 김도겸 선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다 같이 힘을 합쳐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 올림픽 준결승에서 1번 주자를 맡은 그는 2번 주자인 임효준을 힘껏 밀어주며 힘을 보탰다. 비록 결승전은 뛰지 못할 듯하나 준결승전에서의 든든한 활약만으로도 그 수고와 공로는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이유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방탄소년단을 만나는 게 소원인 여고생 이유빈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이유빈은 대표팀 내에서 유일하게 2000년대인 2001년에 태어났다. 올림픽이 끝나면 친구들과 따뜻한 집에서 파자마 입고 놀면서 수다를 떨고 싶고, 잘생긴 방탄소년단을 꼭 한번 만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그는 2016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3위에 올랐고, 2017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종합 3위의 성적으로 평창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낸 후 월드컵 2차 대회 1,000m에서 0.001초 차이로 동메달을 따서 화제에 올랐다. 올림픽을 앞두고 이유빈은 “계주에서는 언니들을 도울 자신이 있다. 내가 완벽해져서 다른 3명이 좀 더 쉽게 나가고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미끄러지며 아찔한 순간을 연출했지만, 다시 일어선 그녀는 선배들과 함께 혼신의 역주를 펼쳐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준결승전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역할은 끝날 전망이지만, 이번 올림픽에서의 경험은 향후 그녀가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김예진. 스포츠동아DB



● 500m의 차세대 강자…무서운 신예 김예진

고등학교 3학년인 김예진은 500m의 차세대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16-2017 시즌 월드컵 5차 대회 500m에서 은메달, 6차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 여자 선수가 최근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최민정 선수를 빼면 그가 유일하다.

2017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계주 멤버로 이름을 올렸고 이번 시즌에는 월드컵 500m 종합 13위에 랭크됐다. 계주 결승전에서 3번 내지 4번 주자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 김예진은 상대팀의 취약한 주자들과 맞붙어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네 명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한 시즌 내내 대표팀 생활을 함께한 박세영, 노아름 선수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과거엔 개인전 금메달 리스트들만을 주목하고 스타로 떠받들던 대한민국의 풍토였지만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개인전 금메달이 아니어도, 또 계주 우승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빙상 칼럼니스트·아이스뉴스 대표
‘빙상의 전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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