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②] 김기천 “‘직장의 신’ 김혜수, 기억에 많이 남는 파트너”

입력 2017-04-19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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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은 “동료들보다 못 나가서 자존심 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벼텨왔다”면서 “배우는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직업 같다. 연기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배우 김기천(60)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산다. 곡성에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몇 달 채 되지 않았다. 작품을 할 때만 서울이나 로케이션 현장에 머무르는 식이다. 충청남도 청양 출신인 그는 왜 전국 팔도 방방곡곡에서 굳이 곡성을 선택했을까. 혹시 파출소장으로 출연한 영화 ‘곡성’이 연이 된 걸까.

“하하하. 그런 건 아니에요. ‘곡성’ 추격 장면을 우리집 앞에 있는 숲에서 찍었다고는 하더라고요. 우연의 일치죠. 제가 시골 출신이라 공기 좋은 데 가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전원생활은 예전부터 꿈꿨던 건데 곡성에 사는 지인을 통해서 방을 구했어요. 요양하는 셈 치고 있게 됐죠. 10평짜리 자그마한 공간인데 황토 찜질방도 마련돼 있어요. 인터넷도 안 되는 시골이에요. 밤이 되면 귀신 나올 것 같은 그런 시골이요.”

영화 ‘곡성’의 밤을 떠올려보니 순간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 눈의 쿠니무라 준이 “와타시와 아쿠마다(나는 악마다)”라면서 쫓아올 것 같은.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나”는 말에 김기천은 “해지기 전에 일찍 자면 된다”고 명쾌하고 유쾌한 답을 내놨다.

“원래 해 뜰 때까지도 잠 못 드는 야행성이었는데 무서워서 일찍 자게 되더라고요. 작은 밭에 감자와 귤 같은 것을 가꾸면서 지내고 있어요. 시간이 날 때는 그 집에 내려가 있어요. 나중에 일도 안 들어오고 뭐 하고 살지 막막할 때를 대비해서 연습 겸 해보는 거죠. 장가를 늦게 가서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있어보는 연습도 하고요. 배우로서 바빠야 하는데 요즘 일이 많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60대 배우 김기천. 정년을 앞둔 동년배 직장인들이 꿈꾸는 귀농, 전원생활을 그는 일찍이 먼저 즐기고 있다. 그러나 배우에게는 정년이 없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무엇보다 관객이 꾸준히 찾는 연기자에게는 ‘끝’이 없다. 다만 차기작으로 이어지기까지 기다림은 끝을 기약할 수 없다. 베테랑 배우 김기천도 때로는 불안함을 느낀다. 곡성은 그에게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게 하는 쉼터다.

“배우는 관객이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대신 경험해서 감동을 주는 직업이잖아요. 진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고 깨끗해야 하는데 도시에 있다 보면 스스로 관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주변의 유혹도 많고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곡성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많이 느껴요. 사색도 많아지는데 배우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죠. 반성도 많이 해요. ‘섭외가 왜 이렇게 안 올까’ ‘내 연기에 한계가 온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내 캐릭터에 싫증을 내는 것은 아닐까’ 싶죠. 그러다가 또 밤에 장작불을 뗄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을 안 하게 되고요.”

김기천이 말하는 ‘내 캐릭터’는 선량한 소시민이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주된 설정으로 다양한 인물을 소화했다. 대표적인 캐릭터는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연기한 만년 과장. 고 과장이 자신을 ‘고장난 시계’라고 표현하는 장면은 철벽같던 미스김(김혜수)뿐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중간 생략) 내 시계는 멈출 날이 많아도 김양 시계는 가야될 날이 더 많은데. 그러니까, 밥 먹고 가.”

“김혜수는 기억에 많이 남는 파트너예요. ‘직장의 신’을 찍을 때 김양(김혜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저도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여러 번 나눠서 찍어야 하니까 감정을 유지하기 되게 어려웠는데 리액션을 잘 해줬어요. 김양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막 쏟아지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기운을 받아서 연기했죠.”

드라마 ‘직장의 신’과 ‘시그널’ 그리고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한 장면.


또 다른 기억에 남는 파트너를 묻자 감독들의 이름이 우수수 쏟아졌다. ‘7번방의 선물’(2012) 이환경 감독, ‘킬리만자로’(2000) 오승욱 감독 그리고 김기천의 충무로 데뷔작 ‘서편제’(1993)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 등이다. 이 감독은 ‘각설탕’ ‘챔프’ ‘7번방의 선물’ 등 김기천을 자주 찾는 연출자. 오 감독 또한 ‘킬리만자로’ 이후 15년 만에 선보였던 연출 복귀작 ‘무뢰한’(2015)에 김기천을 다시 캐스팅했다. ‘서편제’로 김기천에게 충무로의 길을 열어준 임 감독은 이후에도 여러 작품에 캐스팅, 102번째 작품 ‘화장’(2015)도 함께했다.

“제가 숫기가 없어서 ‘저 좀 써주세요’라고 말도 잘 못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나를 소중한 작품에 캐스팅해준 사람들이에요. 참 고맙죠. 이들 덕분에 제가 오늘날 배우 소리를 듣고 사는 것 같아요.”

김기천의 연기적 갈증은 어제보다 오늘 더 깊고 크다. “‘시그널’ 속 삐뚤어진 부성애의 이천구에 대해 욕하는 댓글을 보고 기분 좋았다”는 그는 사이코패스도 좋고 왕 역할도 좋다고 말했다.

“평범하지 않은, 나쁜 놈을 많이 연기해보고 싶어요. 멜로도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임금님도 좋아요. 아직 왕 역할은 멋있고 잘생기고 근엄한 사람들만 캐스팅되는 것 같아요. 실제 왕들이 다 잘생기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대머리 왕도 있었을 거고. 나 같은 사람에게 왕 역할을 시켜주면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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