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규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

입력 2015-10-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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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 ‘터보엔진’ 어선규의 도전은 계속된다. 비록 ‘11’에서 연승행진을 멈췄지만 그는 그랑프리 2연패를 향해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경기장에서 독사처럼 독을 품고 경기를 하지만 집에선 아내와 딸 밖에 모르는 애처가이자 ‘딸바보’다. 집 근처에서 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어선규. 사복 입은 모습이 낯설지만 푸근한 미소는 그대로다. 사진제공|어선규

경정 11연승 마감한 어선규

결혼 후 잘 풀려…난 아내 복 많은 사람
은퇴전까지 톱클래스 선수로 남고 싶다

‘터보엔진’ ‘가을사나이’ ‘미사리 폭주기관차’….

그는 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푸근한 외모와 따뜻한 미소, 곱상한 말세에 비하면 다소 과격한 별명이지만 팬들이 불러주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며 즐긴다. 그중 ‘터보엔진’이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잘 나가던, 아니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터보엔진’이 잠시 멈췄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11연승이라는 엄청난 고공행진을 하던 그의 ‘터보엔진’ 소리가 9월의 마지막 날 별안간 머졌다. 결승선에 들어가 보니 2위였다. 11연승에서 연승행진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의 연승행진은 8월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민수 이재학 등 백전노장들을 휘감아 찌르기로 제압하며 우승한 이후 9월30일까지 무려 두 달간 파죽지세로 11연승을 달렸다. 코스도 가리지 않았다. 유리한 1,2코스는 물론 다소 불리한 4,5코스에서도 그는 승리를 일궈냈다. 그렇다. 한국 경정의 간판스타 어선규(37·4기) 이야기다. 12연승 기록이 좌절되고 나흘이 흐른 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연승기록이 ‘11’에서 멈췄는데 아쉬움이 많았겠다.

“며칠이 지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조금은 아쉽다. 그날(9월30일 15경주) 스타트에 문제가 있었다. 스타트 순간 ‘어?’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탓에 집중이 잘 안됐다. 불길한 예감은 꼭 맞는다더니 류해광 선수의 휘감기에 발목이 잡혔다. 11연승으로 만족한다.”


-11연승의 비결은 무엇인가.


“크게 욕심을 안 부리고 경기에 임했던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어서 홀가분하다.”

어선규가 세운 11연승은 경정에서 값진 기록이다. 경정은 선수의 기량뿐만 아니라 모터와 코스가 경기력에 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1연승은 모터와 코스의 불리함을 조종술 등 기량으로 극복해야만 가능한 기록이다. 그만큼 어선규의 능력이 뛰어난 것임을 방증해 준다.


-시즌 초반 다소 기복이 있었다가 8월부터 엄청난 기세로 치고 올라왔는데.

“지난해 데뷔 10년 만에 그랑프리 제패와 최우수선수로 선정돼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자꾸 성적을 의식하다보니 되레 성적이 뒷걸음질 쳤다. 다행이 여름에 페이스가 올라왔다.”


-경정 방송팀 직원에서 경정선수로 전업해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데.

“2001년 동아방송대 방송기술과를 졸업하고 KTV국민방송에서 근무하다 2002년 경정 개장과 함께 경정방송팀으로 이직했다. 2년간 음향담당자로 일했는데 음향이 경기를 맨 앞에서 정면으로 본다. 매주 경정경기를 보다보니 ‘저거 재미있겠구나’해서 당시 함께 근무하던 직장 상사와 의논한 뒤 경정선수에 도전했다. 체격조건(168cm, 57kg)도 괜찮고 해서 사표를 내고 체대입시학원서 석 달간 체력 트레이닝을 받았다. 다행히 시험에 합격해 2005년 후보생 4기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경정선수 첫 경기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데뷔 첫 경주에서 보트가 전복됐고 한 달 뒤에는 플라잉(출발위반)으로 2개월 출전정지까지 당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장벽이 많을수록 그의 열정을 더 커져갔다. 2007년 하반기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2009년 잠시 슬럼프를 넘은 뒤 2010년부터는 간판급 선수로 우뚝 섰다.


-경정선수로 전업해 가족들이 걱정 많았다고 들었다.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선수생활을 한다니까 어머니께서 걱정 많이 하셨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니까 이해해 주셨다. 지금은 수입도 훨씬 좋으니까 뭐….(그는 6일 현재 올 누적상금 8660만원으로 상금순위 1위다)”


-경쟁상대는 누구인가. 또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난 아직 갖춰야 할 것이 많은 선수다. 실력으로는 김효년 선배를 못 따라간다. 김효년 선배는 꾸준하게 성적을 내고 실수를 하지 않는 선수다.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한다. 닮고 싶은 선수는 김정구(2기) 선수다. 단체생활 등에서 모범적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기점으로 성적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 같다.

“2009년 9월에 결혼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 결혼한 이후 모든 게 잘 풀린다. 아내 복이 많은 것 같다.”


-앞으로 꿈은 뭔가.


“외국에는 일흔이 넘어서도 모터스포츠 선수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반짝 잘하는 선수보다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하는 선수? 하하. 그러나 그만둘 때까지 톱클래스 선수로 남고 싶다. 그게 꿈이다.

어선규는 최근 11연승으로 3분기 경정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또 김종민이 2013년에 세운 12연승의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2년 만에 두 자릿수 연승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다승왕 경쟁에서도 지난 주 2승을 추가해 29승으로 김효년과 단 1승차로 좁혔다. 어선규는 지금 그랑프리 2연패의 신화를 향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다.


● 어선규는?


▲1978년 서울 출생(만 37세)
▲키 168cm 57kg
▲동아방송대 방송기술과 졸업
▲2005년 경정후보생 4기
▲선수등급 A1
▲2008, 2010년 대상경정 1위, 2013년 쿠리하라배 특별경정 우승, 2014년 그랑프리 우승, 2015 제3차 GPP쟁탈전 1위
▲2014 최고득점상, 2014 연승기록상, 2014 최우수선수상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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