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장인 박용택의 평생지원군 ‘아내와 여동생’

입력 2018-07-0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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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최다안타 대기록에 숨은 든든한 지원군!’ 언제나 박용택에게 힘이 되는 아내 한진영(오른쪽) 씨와 여동생 박혜진 씨가 남편과 오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가족’이란 단어엔 사람의 마음을 괜히 먹먹하게 만드는 묘한 마법이 걸려있다. 타석에선 세상 누구보다 강해져야 하는 LG 베테랑 박용택(39)에게도 가족의 존재는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다. 행여나 스스로 작아지는 날이면 애정이 가득 담긴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는 가족들 덕분에 오늘날 KBO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의 영예에도 닿을 수 있었다. 늘 곁을 지키며 남편이자 오빠인 박용택의 매 걸음을 묵묵히 지켜보는 아내 한진영(39·이하 한)씨와 여동생 박혜진(37·이하 박)씨를 압구정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한국 ‘최고’의 타자가 되기까지


- 최근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이를 지켜보는 기분이 어땠나?


한: “그날 현장에서 남편에게 ‘우리 남편 멋지다. 축하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오더라. 본인도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눈물을 참는 게 보였다. 그 순간 관중석을 올려봤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참고 있으시더란다. 수많은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 남편에게 메시지가 300개가 넘게 와서 답장은 받지 못했다(웃음)”


박: “내가 야구를 볼 때면 오빠가 꼭 못 치는 징크스가 있다. 정말 심하다. 오빠가 타석에 나오면 방에 곧장 들어가 버린다. 남편에게서 신기록 달성 이야기를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바로 축하 메시지를 남겼는데 답장은 다음날 아침에야 받았다.”


- 대기록을 앞두고 부담감이 컸을 것 같은데?


한: “남편이 정말 예민한 성격이다. 늘 걱정을 한다. 집에서는 힘든 이야기를 잘 하지 않지만, 표정에서 티가 많이 난다. 힘들 땐 애처럼 울기도 한다. 그럴 때면 괜히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난 믿어. 걱정 마. 박용택이잖아!’라고 이야기 해준다. 그 말을 되게 좋아한다. 그러면 ‘그치?’라면서 다시 기운을 차리곤 한다.”


-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무거울 것 같다.


박: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래서 집에 왔을 때 걱정하는 마음을 애써 티내지 않으려 한다. 오빠가 못할 때는 기사도 아예 안 읽는다. 기사 아래 달린 댓글을 보면 화도 난다. 한 번은 직접 댓글을 달지는 못하고, 악플 옆에 있는 ‘싫어요’ 버튼을 다 눌러보기도 했다(웃음)”


한: “남편도 징크스가 많지만, 가족들도 정말 심하다. 아침에 밥을 세 주걱에 푸면 야구를 잘한다. 그런데 두 번에 밥을 푸면 야구가 안 되더라. 이런 것들마저도 신경이 쓰인다.”


LG 박용택. 스포츠동아DB


● 서로 다른 어린 날의 기억


-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희생한 동생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크더라. 어땠나?


박: “나는 별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오빠만 쫓아다녀야하니 늘 내게 만원을 쥐어주고 집을 비우셨다. 내겐 기회였다. 그 돈으로 좋아하는 탕수육을 혼자 시켜 먹곤 했다. 오빠도 날 참 많이 챙겨줬다. 프로팀에 입단하고 나서도 월급을 받으면 용돈을 줬다. 당시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오면 항상 내 선물도 사다줬다. 그러면서 나를 많이 부려먹기도 했다. 물도 떠다 주고, 안마도 해주고, 내가 고3 때는 자는 나를 깨워서 야식을 해달라고도 했다. 그러면 나는 또 군말 없이 볶음밥을 만들어줬다.”


- 평소 어떤 오빠인가?


박: “나이는 두 살 차이에 불과하지만, 아빠 같은 오빠다. 주위 사람을 정말 잘 챙긴다. 식구에 대한 애정이 정말 강하다. 그래서 나도 오빠를 전적으로 믿는다. 어릴 때는 오빠가 농담으로 한 이야기도 다 진짜로 받아들였다. 정말 장난꾸러기다. 집에선 워낙 서로 놀리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라 어릴 때는 항상 내게 ‘뚱뚱하다’고 놀렸다. 그래도 말투와는 다르게 행동은 정말 자상하다.”


한: “일단 가식적인 사람이 아니다. 최근 5~6년 전부터는 성격도 되게 서글서글해졌다.”


박용택과 그의 아내에게 딸 솔비(가운데) 양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어느새 열두 살이 된 솔비 양이지만 아직도 박용택과 뽀뽀를 할 만큼 살가운 사이다. 사진제공|박용택


● 결혼 생활과 나란히 한 선수 생활


- 결혼 생활을 한지 참 오래 됐다.


한: “2003년에 만나 2005년에 결혼했다. 그 때 남편은 완전 신인이었다. 당시엔 ‘이 사람이 야구 선수다. 유명하다’라는 생각도 안 해봤다.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늘 결혼 이야기를 했다. 빨리 안정을 찾고 싶다면서. 요새는 그런 이야기도 한다. ‘내가 여보를 만나고 안타를 2000개를 쳤네. 내가 여보 만나기 전에는 300개 정도였는데…’라면서. 평소에 감동도 잘 받는다. 감독, 코치님께서 ‘그동안 고생했다’거나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시면 그걸 보면서 혼자 감동한다. 팬들이 올려둔 영상을 보면서도 ‘이것 좀 봐’라면서 혼자 감동하기도 한다.”


- 집에서 특별히 챙겨주는 음식이 있나?


박: “언니가 요리를 정말 잘 한다.”


한: “남편이 한식을 좋아한다. 특히 찌개류나 고기반찬. 솔비도 입맛이 어른스러워서 아빠처럼 나물이나 찌개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 생각보다 밥을 많이 먹지 않는 편이다. 요새는 살도 많이 빠졌다.”


박: “정말? 우리 어릴 때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상에 앉아서 곧바로 밥을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을 정도였다.”


- 딸 솔비에게 한없이 다정한 아빠인 것 같다.


한: “솔비가 아빠를 정말 좋아한다. ‘오늘 아빠 집에 오는 날이지?’라면서 아빠를 기다린다. 월요일엔 외식도 하고, 많이 놀아주려고 한다. 솔비가 열두살인데, 아빠와 아직도 뽀뽀를 한다. 남편이 ‘오늘 뽀뽀했나?’ 이러면 뽀뽀를 한다. 그래도 작년부터는 솔비가 아빠랑 뽀뽀를 하고선 뒤로 돌아 입을 슥 닦더라(웃음).”


- 솔비는 아빠를 정말 자랑스러워 할 것 같은데?


한: “맞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네 아빠 멋있더라’고 이야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집에 와서 이야기 한다. ‘엄마. 누가 우리 아빠 멋있대’ 이러면서.”


LG 박용택. 스포츠동아DB


● 마지막까지 ‘행복한’ 야구 선수이길


- 올 시즌을 마치면 세 번째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고민도 많을 것 같다.


한: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처음으로 ‘나 올해까지만 해도 괜찮지 여보?’라고 물어오더라. 계약이 끝나는 시즌이니까. 늘 불안해한다. 내가 더 할 수 있을까? 올해 잘 할 수 있을까? 계속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걱정 하면서…. 그러면 나는 이야기 해준다. 그래 할 만큼 다 했어. 할 거 다 했어. 그만 해도 돼.”


박: “언니가 옆에서 오빠에게 정말 잘 맞춰준다. 운동선수 아내로 지내는 일이 정말 힘들다고 들었다. 언니도 정말 대단하다.”


- 프로 무대에 들어선 뒤로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았다. 어떤가?


한: “참 본인 성격답다. 팀 문제에 관해선 나와 상의를 잘 하지 않는다. 본인이 알아서 결정한다. 내게 의견을 물어오면 ‘괜찮은 것 같아. 좋을 대로 해’라고만 말해준다.”


박: “어려서 부모님을 보고 자란 영향이 크다. 아버지께선 한 번 결정하면 그대로 가는 성격이시다. 처음 정할 때는 정말 신중한데, 한 번 정하고 나면 변함이 없다. 내가 네 살 때 이사를 갔던 집에서 부모님은 여전히 그대로 지내실 정도다. 오빠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려운 질문을 꺼냈다. 지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겨둔 시간은 서서히 짧아지고 있음을 모두가 안다. 둘은 마지막 타석에 들어설 박용택의 모습을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과 팬에게도 최대한 미뤄두고 싶은 순간이다.


LG 박용택. 스포츠동아DB


- 언젠간 선수로서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테다. 믿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한: “가끔 남편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그라운드에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면 정말 슬플 것 같다’고. 나도 그 순간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박: “그걸 어떻게 보나, 진짜…. 평소에 그냥 보통 경기만 봐도 눈물이 난다. 아직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오빠가 야구 선수를 마치는 날 아버지도 정말 많이 우실 것 같다.”


- 남편, 오빠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새롭게 목표로 잡은 3000안타를 스스로 확신은 못하지만, 정말 이루고 싶어한다. 워낙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스트레스만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야구를 하면서 매일매일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까지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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