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호교수의미디어월드]트루먼쇼&나훈아쇼

입력 2008-01-29 09: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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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다시 못 볼지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짐 캐리가 주인공인 영화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태어나 30년을 살아온 공간이 TV 프로그램 세트장이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이 더는 시청자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현실 세계로 연결된 문을 열고 나가면서 이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이 세트장의 출구로 연결된 계단의 꼭대기에 서서 시청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인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장면이다. 실제와 본질에 대한 관념 철학의 여러 쟁점을 재미있게 풀어낸 이 영화는 ‘감시 사회(Surveillance Society)’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닮았다. 그 주제는 정보사회에서의 ‘권력과 감시’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 다른 점은 오웰이나 푸코가 우리를 지켜보는 ‘빅 브러더’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영화는 한 개인을 감시하는 우리의 문제, 즉 우리가 ‘빅 브러더’라고 얘기한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괴물 같은 소수가 다수인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오웰이나 푸코의 관점보다는 우리 모두가 감시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현대 인터넷 기반 사회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다. 혹자는 이것을 소수에 의한 감시를 의미하는 푸코의 개념 ‘파놉티콘(panopticon)’에 대비해 다중이 소수를 감시한다는 뜻의 ‘시놉티콘(synoptic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다중의 감시는 권력을 견제하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사적인 개인들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타임지 선정 2006년 올해의 인물인 ‘당신들’이 어떤 개인에게는 무서운 ‘빅 브러더’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가수 나훈아의 공개 기자회견이 화제다. 이 회견은 카리스마 넘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과시된 한 편의 ‘나훈아 쇼’였다는 말도 있다. 볼 테면 보라고 외치고 카메라 밖으로 비장하게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트루먼 쇼의 주인공과 분명 닮은 구석이 있었다. 영화가 쇼인 것처럼 그의 회견도 쇼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 나훈아 괴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은 심대하다. 정보사회에서 다수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단순 일탈행위로 치부될 것이 아니다. 근대사회의 기반인 ‘개인성의 종말’과 연결지어 이 문제의 심각함을 경고하는 학자의 말이 빈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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