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삐거덕’모녀…엄마나이뻐?

입력 2008-05-0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제가 7살 때였습니다. 엄마가 제 양손을 꼭 잡으시더니, “선희야! 이제부터 몇 살? 엄마가 몇 살이라고 대답하랬지?” 하고 재차 확인을 하셨습니다. 전 작은 목소리로 “다섯 살이요” 했고, 엄마는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목욕가방을 들고 목욕탕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매표소 앞에서 “아줌마∼ 어른 하나 주세요∼” 하고 외치셨고 주인아줌마는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얘는요? 얘는 몇 살인데요?” 하고 저를 내려다 보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무릎을 최대한 굽혀서 키를 낮춘 다음에 “저… 다섯 살 맞아요”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줌마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어른 1명 값만 받고 저희 모녀를 여탕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아줌마가 자꾸만 제 흉을 보실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와 같이 외출을 하게 됐습니다. 그 때 저는 택시를 처음 타 보는 거라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택시에 타서 출발하자, 택시에 요금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그걸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까,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 “아휴∼ 고놈 참 귀엽게 생겼네. 얘 꼬마야! 너 몇 살이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다섯 살이요” 하고 대답을 했고, 엄마는 제가 대답이 늦으니까 대신 대답하신다고, “얘 일곱 살이에요∼” 이렇게 대답을 하신 겁니다. 다섯 살과 일곱 살이라는 말이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는데, 제가 “엄마, 택시는 일곱 살이라고 해도 돈 안 내? 그럼 나 일곱 살이라고 말해도 되는 거야?”라고 해서 엄마를 몹시 당황시켰지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엄마는, “너는 왜 이렇게 도움이 안 돼. 가만히 있으면 될 걸 나중에 다섯 살이라는 말을 왜 하니? 아휴∼ 하여튼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하고 투덜거리셨습니다. 저는 저대로 속상해서 입이 삐죽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랑 이렇게 어긋나는 일은 중학생이 되어도 계속 되었습니다. 하루는 성적표가 나와서 이걸 어떻게 엄마에게 보여드리나 걱정을 하며 집에 왔는데, 그날따라 엄마 친구 분들이 잔뜩 와 계셨습니다. 엄마는 저를 맞아주시며 여러 아줌마들 앞에서 “얘가∼ 인사성도 밝고, 성격이 참 얌전해” 뭐 이런 식으로 제 칭찬을 쭉∼ 늘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보고 커피 좀 타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저는 엄마랑 아줌마들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드리고 조신하게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 엄마는 씩씩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오셨지요. 엄마는 “너! 도대체 커피를 어떻게 탄 거니?” 하고 소리를 꽥! 지르셨고, 저는 영문을 몰라 엄마를 바라봤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내가 저번에 프림 통에 있는 거 밀가루라고 얘기했잖아” 하고 소리를 지르시는데, 저는 ‘이제 죽었구나’생각을 했습니다. 엄마 말씀이 커피를 저으면 저을수록 반죽이 돼서 모두들 무척 당황했다고 하십니다. 그 날 안 그래도 시험 성적이 엉망이었는데, 커피 사건 때문에 더 크게 혼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엘리베이터에 타서 저희 집 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을 때, 저 멀리서 한 아주머니가 뛰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이 거의 3분의 1쯤 닫혔을 때였고, 저는 기다려주기가 귀찮아서 그냥 올라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시며 신경질적으로 신발을 벗으시더니, “아니 무슨 그런 애가 다 있어. 같이 가자고 뛰어오는데, 어쩜 엘리베이터를 세우지도 않고 그냥 올라가? 아휴∼ 뉘집 자식인지 가정교육 한번 잘∼ 시켰네” 이러시는 겁니다. 그렇게 엄마와 저는 뭘 하든 조금씩 엇나가는 편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하고 나니 그게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직장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들어오면, 가끔 텅 비어 있던 냉장고가 각종 야채와 밑반찬으로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저희 엄마가 저 없는 사이에 다녀가신 겁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일하러 다니는 제가 가장 마음 쓰인다는 엄마! 이제 저는 엄마 없으면 못 살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에게 늘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경남 진주 | 김선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