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액세서리]발랄상큼한‘옥색셔츠’수트만입으면왜시들?

입력 2008-05-11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섹스&더 시티’의 캐리가 남자였다면? 아마 그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마놀로 블라닉의 슈즈 박스가 아닌 각종 컬러와 디자인의 셔츠였을 것이다. 옷차림이 가벼워진 요즘, 셔츠는 타이 대신 어둡고 단조롭기 쉬운 수트 차림에 생기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셔츠에 관해서라면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빨랫줄에 걸려 있어도 베일 듯한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던 아버지의 화이트 셔츠. 그것만이 남자의 셔츠인 줄 알고 있던 내게 출장에서 마주한 이탈리아 남자들의 셔츠는 충격이었다. 산호, 풋사과, 지중해의 하늘빛 컬러는 물론 격자무늬에서 심지어 페이즐리까지 셔츠 안에 있었다. 넓었다, 좁았다, 길었다, 짧았다 하는 다양한 칼라의 모양과 접었다 폈다 하는 커프스의 모양은 말할 것도 없고 두툼한 자개단추와 색색의 실까지. 마치 ‘개츠비’의 셔츠에 울음을 터뜨린 데이지처럼 감동한 나는 출장 내내 셔츠 사 모으기에 바빴다. 이렇게 산 셔츠들을 오래오래 잘도 입고 다녔을까? 그렇지 않다. 충동구매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고민을 통해 구입한 셔츠는 도무지 나의 수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년 내내 옷걸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수트 라펠(접은 옷깃)에 비해 너무 좁거나, 또 너무 넓거나, 수트의 품에 비해 너무 커 아코디언 같은 주름이 생기는 셔츠. 왜 상큼한 옥색 셔츠가 내 수트 안에만 들어가면 얼굴빛까지 칙칙하게 만드는지. 타이 한번 맬라 치면 두툼한 타이를 받쳐주지 못해 목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셔츠 때문에 수트는 물론 내 몸까지 다 갈아 치워야 할 판이었다. 셔츠는 수트 차림에 있어선 기본이고 기초다. 속옷을 입건 입지 않건 간에 셔츠를 받쳐 입고 나서야 비로소 타이도, 조끼도, 수트도 입을 수 있다. 즉 셔츠의 역할은 수트 차림이 돋보일 수 있게 받쳐주는 데 있는 것이다. 수트 위에서 돋보이고자 나서거나 전혀 다른 길을 가서는 안 된다.형태로만 보자면 셔츠는 수트 깃 위로 살짝 올라온 견고한 깃, 소매 밖으로 나온 깔끔한 커프스, 타이 뒤로 살짝 드러나는 믿음직한 가슴만 보여줄 수 있다면 족하다. 색상은 수트와 얼굴과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셔츠를 고를 때 셔츠만 입어보지 말고 반드시 수트까지 함께 입어 본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사이즈도 중요하다. 아무리 타이트한 셔츠에 단추를 두어 개 열어 두는 것이 유행이라도 셔츠는 몸에 ‘잘’ 맞는 정도여야 한다. 너무 작아서 움직일 때 단추가 벌어지거나 여유가 지나쳐 몸통에 주름이 잡히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전체의 조화도 중요하다. 라펠과 가슴이 넓은 그레고리 팩의 회색 수트에 능금색 셔츠를 떠올려 보라. 칼라는 좁다 못해 수트 안으로 숨어 버렸고, 소매에는 커다란 보석 장식이 늘어서 있다. 이게 과연 우아한 차림새 일까? 셔츠는 수트를 위한 서포터일 뿐이다. 한 승 호 더페이스샵 브랜드 매니저 아버지께 남자를 배우고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은 수트 애호가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