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생활38년째김수미“이젠‘일용엄니’처럼살고싶어”

입력 2008-05-18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촬영 현장이든, 일상의 외출길이든 그녀의 손에는 보온병이 들려있다. 커피였다. “커피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라고 묻자 “연한 커피를 들고 다녀”라고 말한다. 촬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몸이 조금씩 지쳐가고 졸음도 쏟아지는데 그 커피 한 잔이면 늘 깨어있게 한다”고 말한다. 김수미는 20년 동안 몸무게가 늘지도 빠지지도 않은 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김치 사업을 하는 그녀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 촬영장에도 직접 만든 반찬이며 먹거리를 챙겨 다닌다. 스태프와 후배 배우들과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수미가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비결도 바로 그 먹거리와 나눔의 인정에 있나보다. 배우 김수미를 만난 건 5월8일, 어버이날이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담장을 타고 피어난 꽃을 배경으로 김수미는 카메라 앞에 섰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리듬을 맞추듯 화사한 의상으로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 가볍게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6월12일 개봉하는 영화 ‘흑심모녀’(감독 조남호·제작 이룸영화사)에서 “‘공주병’에 걸린 치매 할머니, 20대 ‘꽃처녀’로 착각해 발랄한 일상을 살아가는 할머니”라는 “그래서 김수미가 이 역에 딱 어울렸다”는 홍보 담당자의 귀띔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뷰를 막 시작하려던 즈음, 김수미가 카페 입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아들이 나타났다. 아들의 손에는 카네이션으로 만든 꽃다발이 들려져 있었다. “지나가다 들렸어요. 엄마 계시다는 얘기 듣고.” 아들이 건넨 카네이션 다발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 어머니의 따스한 표정이었다. -아침에 카네이션을 받지 못하셨나봐요. “아이들이 바쁘니까. 나도 나지만.” -자녀가 둘이시죠. “이젠, 뭐 다 커서 밥벌이도 하고. 그렇지.” 김수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탁자 위에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놓였다. 몇 스푼을 가져다 떠먹고는 또 다시 20대의 발랄함으로 돌아가 “야! 정말 맛있다. 좀 들어봐”라며 스푼을 권했다. 그 모습이 천진하다. -영화 ‘흑심모녀’ 속 캐릭터와 많이 닮았다고 하던데. “치매에 걸려 자신이 20대인 줄 알고 사는 할머니지. 나와 비슷하다기보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잘 그린 솜씨가 제법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 치매 걸린 할머니의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김수미는 그 또래 중견 여배우로서는 거의 유일한 코믹 캐릭터로서 관객에게 각인된 지 오래다. 그녀는 젊은 후배들과 앙상블을 엮어내며 그들이 결코 따라하지 못할 코믹한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정작 실제 촬영현장에서는 아무래도 대선배인 그의 무게감이 상당할 것 같다는 선입견은 떨칠 수 없었다. 그녀가 답했다. “처음에는 다들 어려워하지요. 내가 무섭게 생겼나? 그래서 먼저 다가가지. 건들건들하면서. 그럼 후배들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요. 예전처럼 선배라고 무게 잡고 있으면 안돼. 내가 먼저 후배들하고 어울려야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다른 테이블에서 인터뷰를 끝낸 배우 이범수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요즘 재미있는 게 ‘온에어’ 같다”고 화답하며 김수미는 이범수에게 드라마의 결말에 관해 묻기도 했다. 따져보니 두 사람은 2004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이범수와 모자의 인연을 맺었다. “‘슈퍼스타 감사용’을 촬영할 때 이범수가 아픔을 겪었잖아요. 한참 촬영이 중단됐다 범수가 나타났는데, 내가 그랬어.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모두 순간이야. 그러니 잘 견뎌내야 돼’라고.” -그럼 본인에게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언제였나요. “뭐, 그런 얘기를. 90년대 중반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내가 빙의로 힘들어하던 때지 뭐. 이젠 좀 쉬고 싶어.” -쉬고 싶다는 말은. “지난 몇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것 같아. 드라마니, 영화니 단 한 순간도 쉰 적이 없었어. 이젠 여행도 좀 하고 시골에 가서 쉬면서 살고 싶어.” -시골이라면. “내 고향이 군산인데, 그 곳이 됐든, 어디 저 남도 땅이 됐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도 짓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거지. 아! 오해는 하지 마. 앞으로 10년 뒤 쯤, 아들 딸 장가 시집보내고 나도 좀 더 연기하고 그런 뒤에 그러고 싶다는 거니까.” 그러면서 김수미는 한때 전북 무주의 한 마을 민박에 잠시 머물다 온통 하얗게 쏟아지던 눈발을 보며 왠지 모를 까닭에-그녀는 아마도 뭔가 뿌듯하고 가슴 벅찬 기쁨 같은 것이었다고 기억했다-눈물을 흘린 추억을 꺼집어냈다. “그렇게 혼자 열흘을 지낸 적도 있는데, 뭘. 시골 생활이 내겐 맞는 것 같아. 그러다가 또 어울리는 역할이 있으면 연기도 계속 하겠다는 거지.” 수십년의 연기 인생을 어찌 한 순간에 버릴 수 있을까. 김수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꿈꾸는 미래 노년의 일상을 밝혔지만 그래도 연기에 대한 애정과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다음 달부터는 책을 좀 써보려고 해”라며 계획을 밝히자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얘기냐고? 그 때 가서 얘기할께.” 한 작품을 또 최선을 다해 작업한 뒤 갖는 여유 속에서 김수미는 여전히 20대의 젊은 후배들 못지않은 정열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드러내고 있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김수미는… 1951년생인 김수미는 올해로 연기 생활 38년째를 맞는다. 1970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 20대인 70년대에는 ‘한국의 나탈리 우드’라 불리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수미는 그녀가 연기한 MBC 드라마 ‘새아씨’ 속 캐릭터의 이름을 따 제작된 1982년 영화 ‘화순이’로 스크린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후 몇 편의 영화를 거쳐 2005년 ‘마파도’를 통해 중년의 코믹 여배우로서 각인됐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그 절정이었으며 맛깔스러운 캐릭터와 연기로서 김수미는 지금 젊은 관객들에게도 사랑받는 배우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