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Ms.박의라이브갤러리]꼭아름답지만은않은미술세계

입력 2008-05-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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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은 문화행사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는 문화행사의 향연에 뒤질세라 지난 토요일에 필자는 갤러리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다양한 문화 행사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 중 하나가 5월 16일 시작된 광화문 일민미술관의 ‘공장(工場)’전 관람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이 자원봉사자가 1,2층 전시실을 꽉 채운 한국의 산업현장의 사진들 중 몇몇 사진들이 보기에 좀 거북하다고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소나 돼지, 닭의 도축 과정을 적나라하게 포착한 사진들은 이 학생뿐 아니라 대부분의 관람자들에게도 분명 시각적 충격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학생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될 수 있는 작품의 조건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추측해보건대, 한낮의 눈부신 태양 광선이나 석양의 노을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연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을 것이다. 또는 요즘 유행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의 앤디 워홀 류의 팝아트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름답다’ ‘영웅담’ ‘성스러운’ 그리고 ‘어마어마한’이라는 단어들이 미술관에 걸릴 수 작품의 조건이라면, 반대로 걸릴 수 없는 작품은 이와 대조적으로 ‘추하다’ ‘소시민의 삶(일상)’ ‘세속적인’ 그리고 ‘싸구려’라는 조건을 갖는 것들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구별 짓기’가 얼마나 하나마나한 일인지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이나 인터넷의 문화 예술란에는 공공미술, B급 미술 찾아가는 미술관, 시민참여 미술, 온라인 미술관 등 그러한 ‘구별 짓기’의 경계를 넘는 전시나 활동들을 소개하는 기사들로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가 그런 류의 작품과 정작 마주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즉 예술작품과 예술작품이 아닌 것의 경계선은 구별을 위한 구별이라는 매우 소모적인 일임을 잘 알면서도, 미술관에 전시된 후자의 전시물들을 대할 때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혹감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이 당혹감에서부터 작품 감상은 지루하다는 편견이 흥미로운 호기심으로 변모된다. 이 변모 과정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지금처럼 바로 2년 전에도 일민 미술관에서 열린 적이 있다. 작가 최정화가 연출한 전시로, 그가 연출한 전시 제목은 부엌에서 굴러다니는 소쿠리를 전시장 한 쪽에 무작위로 쌓아올린 작품만큼이나 당혹스럽다. 전시 제목은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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