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단뛰기희망김덕현“구름판만잘구르면,메달은나의것”

입력 2008-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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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종목은 육상이다. 총 302개의 금메달 가운데 47개가 육상에서 나온다. 하지만 메달권 진입이 가능하다고 평가받는 종목은 마라톤 정도. 육상필드종목에서는 1984년 LA올림픽 김종일(남자 멀리뛰기), 1988년 서울올림픽 김희선(여자 높이뛰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진택(남자 높이뛰기)이 기록한 8위가 최고성적이다. ‘한국 세단뛰기의 희망’ 김덕현(23·광주시청)은 역대 필드종목 최고성적에 도전한다. ○ 잠자던 재능, 세단뛰기를 만나다 “야, 너 걸음걸이가 왜 그래?.” 유치원 때 단짝 친구가 물었다. “난 이게 편한데….” 김덕현(23·광주시청)은 앞꿈치를 심하게 들면서 걷는다. 아장아장 시절부터 2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특이한 걸음걸이는 발목 힘을 키웠다. 도약에 대한 재능은 몸 안에 잠자고 있었다. 육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벌교삼광중학교 2학년 때. 처음에는 100·200m 단거리와 멀리뛰기가 주종목이었다. 칼 루이스를 꿈꿨지만 단거리에는 소질이 없었다. 멀리뛰기도 정상을 바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 해 겨울, 800m로 진로를 바꿀 결심을 했다.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하얀 입김을 불어가며 산길을 뚫었다. 봄이 되었지만 800m 기록은 나아지지 않았다. 효과는 엉뚱하게도 멀리뛰기에서 나타났다. 몇 개월 만에 5m50에서 6m30까지 기록이 향상됐다. 김덕현은 “산 오르막 훈련이 발목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곧이어 전국에서 이름 난 멀리뛰기 선수가 됐다. 김덕현은 “이 때부터 남들보다 높게 떠서 날아가는 데 맛이 들렸다”고 했다. 광주체고에서 만난 김혁(32) 코치는 멀리뛰기와 세단뛰기가 접목된 훈련들을 시켰다. 우연한 기회에 눈썰미로 익힌 기술을 흉내 냈다. 세단뛰기를 하던 동기들보다 기록이 좋았다. 김혁 코치는 “이것도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호기심이 많은 김덕현의 눈이 반짝였다. 고등학교 2학년 4월, 첫 전국대회(춘계중고연맹)에 나갔다. 3학년들은 “쟤는 누구냐?”고 수군거렸다. 아직 기술이 몸에 익지 않았다. 밸런스가 맞지 않아 6차례 중 5차례가 실격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기록(15m06)만으로도 1위를 차지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 한국기록 제조기 김덕현은 2005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 16m78을 뛰며 박민수가 1994년에 세운 16m73의 한국기록을 11년 만에 경신했다. 세단뛰기 입문 3년 만에 일군 쾌거. 이후 2005년 11월 마카오 동아시아경기(16m79), 2006년 9월 요코하마 슈퍼그랑프리대회(16m88)에서 연이어 한국 기록을 갈아 치웠다. 2006년 10월 전국체전에서는 한국세단뛰기의 숙원인 17m 벽을 깨며 17m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7년 8월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김덕현은 16m71로 9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세계육상대회에서 10위 안에 든 것은 1999년 스페인 세비야대회에서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이 6위를 기록한 이후 처음. 하지만 자신의 최고기록 17m07에는 한참 못 미쳤다. 김덕현은 한 달 사이 3개 대회를 뛰고 있었다. 2007년 7월 요르단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7m00으로 2위, 8월 방콕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17m02로 1위를 차지했다. 몸 상태가 좋아 오버페이스를 하다보니 세계대회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김혁 코치가 개인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것도 심리적 위축을 가져왔다. 김덕현은 “뭐가 안 되는 지 잡아줄 사람이 없어 난처했다”고 회상했다. 주변에서는 결과에 들떴지만 정작 본인은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 아시아신기록·올림픽메달, 두 마리 토끼 잡겠다 “올림픽에서 8강안에 들 수 있겠냐”고 물었다. 김덕현은 “스텝만 맞으면 메달도 가능하다”고 했다. 올림픽에서는 예선 상위 12명의 선수들이 파이널에 진출한다. 12위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17m10 이상의 선수들은 자동진출. 이 가운데 최종 8명이 슈퍼 파이널에 오른다. 수렌 가자리안 코치는 “메달권은 최소 17m30 이상을 뛰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1994년 올레그 사키르킨(카자흐스탄)이 세운 아시아신기록(17m35)을 넘어서야 한다. 보완해야 할 점은 도움닫기의 스피드를 끝까지 살려서 뛰는 것이다. 세단뛰기는 홉(hop), 스텝(step), 점프(jump)로 나뉜다. 수렌 코친는 “다소 낮게 날더라도 홉과 스텝의 타이밍을 빨리하라”고 강조한다. 세계기록(18m29) 보유자 조나단 에드워즈(영국) 스타일이다. 김덕현은 “멀리뛰기는 타이밍이 안 맞으면 기록이 덜 나오지만 세단뛰기는 바로 실격”이라면서 “내가 해본 육상 종목 중에 가장 어렵다”고 했다. 김덕현은 전국체전에서 멀리뛰기를 병행하고 있다. 2006·2007년 전국체전에서는 멀리뛰기와 세단뛰기를 2년 연속 2연패하기도 했다. “세단뛰기를 몇 나 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덕현은 “로 따질 정도도 안 된다”면서 “이제 밑거름 정도만 안다”고 했다. “나는 진리의 넓은 바다 앞에서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고 있는 어린이와 같다”던 뉴턴처럼 김덕현도 겸손한 마음으로 또 다시 구름판을 밟고 있었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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