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Ms.박의라이브갤러리]영감을일깨우는주문‘수요일엔레드와인을’

입력 2008-06-1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인사동에 자주 나가본 사람이라면 수요일 오후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거리가 붐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요일은 인사동 대부분의 갤러리에서 새로운 전시가 시작됨을 알리는 이른바 ‘오프닝 데이’기 때문이다. 오프닝 데이는 작가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날이자, 예술계 인사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날이다. 여기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와인’이다. 언제부턴가 갤러리들은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와인 없이 전시 오프닝을 진행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물론 생수나 청량음료, 각종 과일주스 등의 다양한 음료도 있다. 하지만 와인은 다르다. 그것은 전시 오프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즉 ‘보편적인’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다. 와인이 갤러리 전시 오프닝에서 그만큼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에는 특정 문화의 기호에 대한 집단적인 동의가 자리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와인을 마시면 예술적이 된다! 프랑스의 이론가 롤랑 바르트는 오늘날의 이 같은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듯 1972년에 출간한 ‘신화론’에서 “와인을 믿는 것은 강제적인 집단 행위다”, “와인을 마시면 프랑스적(的)이 된다!”고 설파했다. 그의 책 제목 말마따나 이제 와인은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신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신화 뒷면에 어떠한 사실이 숨어있는지 궁금해 하지도, 또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신화든지 간에 그것은 대조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와인은 그것을 제조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생업의 절박한 수단이지만, 예술인들에게는 프랑스적인 것을 나타내주는 근사한 기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포도주를 와인으로, 아침 겸 점심을 브런치로, 고기를 스테이크로, 운동화를 스니커즈로, 분홍을 핑크로 말하는데 더 익숙해져버렸다. 일단 익숙해지면, 그 때부터는 우리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이 기호들 스스로가 자가 증식하여 신화가 된다. 오늘날 갤러리에서 수많은 신화들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계속해서 열린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갤러리에 들어가면 예술이 된다”는 신화를 비판하려했던 젊은 작가들의 파격적인 실험 대부분이 갤러리로 입성해서야 그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아이러니이긴 마찬가지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예술가는 이 아이러니 자체를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안주해도 되는 것일까? 큐레이터로서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일단 우리가 속편하게 부르는 현실이라는 것도 하나의 신화일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신화라는 빛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드러내 보이는 예술가들의 실험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일깨우는데 일조했다는 것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이라는 신화는 언제 어디서나 혈기 왕성하고 의식 있는 젊은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