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크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기도 하고 작게는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여행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삶에 주는 영향은 세기를 막론하고 분명 신선한 것이리라.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축 늘어져 ‘현실의 무게’에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쯤 누군가 귓가에 대고‘나 여행가!’라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클릭된 ‘여행’이라는 단어가 찬물이 되어 온몸에 확 끼얹어짐과 동시에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초점 잃은 동태눈과 같던 두 눈이 별빛처럼 반짝이게 될 것이다.
그 설렘. 그 동경. 말라버린 잎사귀에 고단백 영양제를 투사하듯 나에게도 허락되기를 누군들 바라지 않겠는가?
휴식이 되도 좋고 모험이 되도 좋다. 무모한 도전이었을망정 실패해도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이 주는 관대함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여행에 대해 긍정적인 면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J. K. 위스망스(Joris Karl Huysmans, 프랑스의 작가)의 소설‘거꾸로(A Rebours)’의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주인공 데제생트 공작을 잠시 등장시켜 여행에 부정적인 이들의 대표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데제생트 공작은 네덜란드에 다녀온 뒤, 영국에 가려다가 한마디로 만사 귀찮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해 결국 포기하고 다시는 해외여행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별장을 여행의 가장 훌륭한 측면인 여행에 대한 기대, 즉 불편은 전혀 겪지 않고 여행의 가장 유쾌한 측면들만을 상상하게 만드는 물건들로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세계를 다 돌아본 것과 다름없다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비슷한 뉘앙스의 얘기는 늘 있어왔다. “산을 꼭 넘어야지 산에 대해서 아는 건 아니잖아. 책은 왜있니? 이렇듯 책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고생하며 이것저것 다 겪을 게 뭐야?”
대부분 자신의 지적능력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조금 덜 똑똑한 관계로 책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면 경험하기 위해 일단 일을 벌인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라는 낯선 환경에서의 스스로와의 첫 대화는 바로 이것이다.‘어서 빨리 나를 안정시키고 쉬게 하라!’
이렇듯 여행의 설렘도 잠시.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심리적, 신체적 요구에 무너지지 않고 여행이 주는 미학적 거리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을 함에 있어 우리는 과연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하늘은 파란지 별은 떠있는 건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언어는 있으나 소통되지 않았던 시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외롭다고 말하는 이유는 각자가 외딴섬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자. 다들 미뤄두었던 생각주머니를 차고 누군가와, 혹은 혼자서라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면. 과감히 떠나라!
박 기 영
정규앨범 6장과 싱글앨범 1장을 발매
한 싱어송라이터, 최근 33일간의 도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박기영 씨 산티
아고에는 왜 가셨어요?’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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