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촌테러11명참사…피로물든뮌헨올림픽

입력 2008-08-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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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땀 흘린 선수들이 겨루는 공정한 게임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힘 싸움이 물밑에서 벌어지는 각축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세계정세가 바뀔 때마다 올림픽은 직격탄을 맞았다. 남·북간 화해무드가 흐르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양측 선수단은 동시에 입장했지만 70년대 이른바 ‘신냉전’ 시대에는 선수촌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대회로 기억된다. ‘검은 9월단’이라고 불리는 8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범이 선수촌을 습격해 2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살해하고 9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에 감금된 20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인질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인질 전원과 테러범 5명, 경찰 1명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스포츠 경연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은 오랫동안 세계인의 머릿속에 남았고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2006년 이를 영화로 옮긴 ‘뮌헨’이란 작품을 내놓았다. 1964년 동경 올림픽은 국가별 갈등이 극에 달한 대회다. 올림픽 개막보다 한 해 앞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올림픽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체육대회 GANEFO(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가 열렸다. 이 대회에 참가한 타이완, 이스라엘은 동경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했고 GANEFO 회원국 인도네시아, 북한은 올림픽에서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어수선한 가운데서 IOC는 한 발 더 나아가 인종 차별정책을 고수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 출전권을 부여하지 않아 동경 올림픽은 정치적 갈등으로 얼룩졌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60개국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하는 뜻으로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이 불참 운동을 주도했다. 결국 60여 개국이 미국의 뜻에 동참했고 참가국 중에서도 개막식과 메달 수여식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때문에 메달 수여식에서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되는 일도 자주 연출됐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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