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불리운사나이’김경문감독

입력 2008-09-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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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의 잡기노트 <98> 고3이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교사를 칭찬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같은 실적을 놓고도 과외선생이나 학원강사는 족집게라는 명성을 얻는다. 스포츠 국가대표라면 상위 1%에 해당하는 비범한 체력들이므로 감독에게로도 스포트라이트가 꽂힌다. 물론 이 명제에서는 역도 참이다. 도박에서 패한 장수는 각광 대신 뭇매 대상이다. 25전 11승8무6패로 쫓겨난 본프레레(62)가 보기다. 김경문(50) 감독은 안면을 미동도 않는 포커페이스로 건곤일척에서 승리했다. 김 감독을 강소천(1915~1963)의 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카메라 앞에 앉혀 머릿속 도핑 테스트를 하지 않는 한 짐작 난망인 속셈이다. 지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상식파괴 전술이었다. 김성근(66) 감독이 금메달을 따온 김 감독에게 말했다. “김경문 감독에게는 기가 좋은 귀신, 호시노 감독에게는 나쁜 귀신이 붙은 모양이다.” 축하성 농담이지만, 베이징 9연승을 복기하면 야구의 신이 김경문 감독을 도왔음직한 소름끼치는 순간이 한 둘이 아니다. 김 감독은 대타 김현수(20), 번트 이대호(26), 대주자 정근우(26) 카드를 던졌다. 왼손투수 앞에 왼손타자 김현수를 내세운 갬블은 이후 일대 터닝포인트로 확인됐다. 우승 후 김 감독은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뒀다”, “이판사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귀신이시여, 뜻대로 하소서다. 7게임 연속 죽을 쑨 이승엽(32)을 향한 마음도 결국 케세라세라였다. 이승엽의 존재 자체가 선수들에게 힘을 줬다, 언제인가는 큰 경기에서 한 번 해줄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좌경천리 입경만리의 경지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홍명보(39) 김남일(31) 김태영(38)을 빼고, 차두리(28) 이천수(27) 황선홍(40)을 넣어 이긴 히딩크(62)를 예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년 전에는 일본이 귀신 덕을 봤는지도 모른다. 야구를 종교처럼 숭상하는 일본은 당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결승을 앞두고 이치로(35)와 나머지가 기사회생하자 가미카제(神風)를 들먹였다. 725년 전 제 나라로 쳐들어온 몽골군 함대를 침몰시킨 태풍이다. 2차 대전 중 자폭용 비행기도 가미카제다. 이 폭탄 항공기는 연합군 전함 ‘34’척을 침몰시켰다. 일본 야구 역시 ‘34’였다. 3전4기 끝에 그악스레 WBC 트로피를 챙기고 말았다. 거센 바람과 폭우는 한 세트다. 그날 미국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에는 비가 쏟아졌다. 가미카제가 개입했나 보다. 그러나 WBC 다음 번 빅이벤트에서 일본야구는 몰락하게 돼있었다. 13세기 가미카제가 원나라 군대를 수장해버린 후 당대 집권세력 가마쿠라 바쿠후는 쇠퇴했다. 전쟁에는 이겼으나 비용소모가 너무 컸다. 20세기 가미카제의 자살 특공에도 불구, 패전국은 일본이었다. 역사는 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은 일본이 무릎을 꿇을 차례였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배를 들 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듣기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 OB 베어즈 선수 김경문은 프로야구 정착에 크게 이바지한 투수 박철순(52)을 리드하는 포수였다. 수비형인 데다 홈런타자도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의 ‘헐크’이만수(50) 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같은 팀의 양세종(50) 신경식(47) 구천서(45) 구재서(45)보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프랭크 시내트라(1915~1998)의 ‘마이웨이’를 주제가 삼은 박철순의 불사조 투구를 가능케 한 드러나지 않은 조력자 김경문도 이제는 ‘마이웨이’를 흥얼거린다. 시내트라의 것은 아니다. 윤태규(43)의 가요 ‘마이웨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 번 더 부딪혀보는 거야….’ 1등은 속성상 모험이 어렵다. 2등은 좀 덜하다. 무모한 도전도 일정부분 가능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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