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호“누가때리면,허허웃고…그냥맞고살래요”

입력 2008-09-1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신기전’서조선의자존감을지키는내금위장연기
“누가 날 치더라도 맞고 살겠다.” 배우 허준호는 늘 일만 생각하며 산다고 했다. “노는 걸 좋아했고 술의 끝도 봤다”할 만큼 호탕했던 한 때의 젊음도 이제는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다. 데뷔한 뒤 25년 동안 “굴곡이 굉장히 많았다”고 그는 말했지만, 그를 아는 선배들은 “잡초 같다”면서 “넌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이 같은 말은 실상 우연도, 행운의 소산도 아니다. 그 스스로 25년 동안 쌓아올린 열정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세상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열정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배우 고 허장강에서 이름을 따온 장강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덜컥 뮤지컬 제작에도 뛰어들었을 때 그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에 “미친 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지금은 쫄딱 망했”지만 우직하게 이를 밀고 가고 있다. 그런 열정의 이어짐 속에서 허준호는 또 다른 흥행의 단맛을 보고 있다. 4일 개봉한 영화 ‘신기전’(감독 김유진·제작 KnJ엔터테인먼트)에서 중국 명나라의 야욕에 맞서 조선의 자존감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내금위장 역을 연기한 허준호는 추석 연휴를 지나며 224만8000여명의 관객을 맞아들인 기쁨에 휩싸여 있다. 허준호는 자신의 2003년 출연작이자 한국영화 첫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인 ‘실미도’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내들었다. “영화 ‘실미도’ 때 분위기인 것 같다. 시사회를 열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 심지어 살벌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봉 뒤 관객 반응이 뜨거웠다.” - 드라마 ‘주몽’에 이어 이번도 사극인 데다 캐릭터가 강하다. “그런 것만 주어져 그렇다. 배우는 선택되는 사람이다. 게다가 내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불러주는 대로 충실할 뿐이다. 거기에 관객의 박수까지 받으면 얼마나 좋은가.” - 액션 연기도 이젠 이력이 났겠다. “허구한 날 하는 건데, 뭘. 어떤 액션 연기도 할 수 있다. 대역을 맡기려면 액션배우들이 그런다. ‘그냥 형이 해!’라고.” - ‘신기전’에 대한 관객 호기심도 높은 것 같다. “배우들도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놀랐다. 무슨 설화인 줄 알았는데 역사적인 사실이라서 더욱 놀라웠다. 또 통쾌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세종(안성기)의 명을 받아 몰락한 양반의 자손인 부보상단의 행수(정재영)에게 신기전의 제작을 맡기는 내금위장으로서 약소국의 자존적 비장감을 드러내는 허준호는 결기 가득한 인물이다. 그처럼 강렬한 이미지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그에게 사적인 면모에 대해 묻기 전, ‘답을 해줄까’ 하는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 이제 21일이면 부친의 33주기를 맞는다. “매년 아버지 묘소에 가족과 함께 가서 예배를 드린다. 돌아가신 지 꽤 됐는데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회자되는 배우이니. 난 늘 내게 묻는다. ‘배우가 된 게 맞는 길이냐’고.” - 그 동안 굴곡이 많았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인생의 아픔도 겪었다. 외롭지 않은가. “외롭다기보다 조금 힘든 건 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감내하고 살아가는 일이 많아졌다. 외로움도 많지만 신앙의 힘이 크다.” - 원래 불교 신자 아니었나. “4년 전 교통사고로 거의 죽다 살아났다. 그 때 개종을 했다.”(허준호는 올해 연말 CCM 싱글을 내기 위해 준비 중일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고 있다.) - 요즘 최대 관심사는 뭔가. “없다. 난 이 쪽 일 말고는 모른다. 돈 계산도 잘 못한다.” 허준호는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울렁증이 더 생기고 설렘도 커진다”면서 “내 한계를 내가 안다. 관객의 기대감을 채우지 못하면 미안하다. 나에 대한 기대치는 맞춰야 하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마치 갓 데뷔한 신인의 다짐처럼 들려온 말이었다. “데뷔할 때 내가 어떤 배우가 될 지 몰랐다”는 그는 이제 “내 식대로 산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그건 그야말로 그들의 이야기일 뿐. 허준호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누가 날 치더라도 맞고 살겠다”고, 그래서 “조급함은 이제 없어졌다”는 허준호는 자신의 인생에, 아니 누구의 인생이라도 있게 마련인 ‘딴지’가 “항시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 힘을 북돋우며 나아가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