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1세대 작가들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요?
“흐흐, 아마 지금 당시 인기를 누린다면 많은 돈을 벌겠죠. 그땐 책이 나가면 사람들이 만화방 앞에 줄을 서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책 한 번 찍고 나면 보통 1주일 새 2∼3번씩 재판을 찍을 정도였으니까. 제 기억에 선동렬 선수가 1억원 계약을 해 화제가 됐던 해가 있었어요. 그게 프로야구 최고 계약금이었죠. 그런데 그때 제가 그 정도 벌었어요. 신문 보면서 별로 부럽지 않았던 생각이 납니다.”
당시 무협작가들은 요즘 작가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썼고, 그만큼 다작을 했다. 이들의 초속기 집필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것이었다.
“저는 굉장히 느린 축이었어요. 그래도 석 달에 한질은 썼죠. 서효원이란 친구는 한 달에 두질도 냈어요. 권수로는 평균 5권. 7권까지 쓰기도 했죠. 그 방면에서 그는 비교가 불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서효원은 1992년 위암으로 작고했다)”
창작무협의 전성시절은 길지 못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하향세를 그린 무협시장은 결국 초토화되다시피 하는 운명을 걷는다.
천편일률적인 구성, 뻔한 스토리, 질 떨어지는 졸작의 대량 출간이 독자들로부터 차가운 외면을 당했다. 게다가 몇몇 작가들에게만 인기가 몰리다보니 신인들의 진출이 쉽지 않았다. 신인들은 기성작가들의 이름 뒤에 숨어 책을 내야 했다. ‘이름값’을 못 하는 졸작들이 범람했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스타작가들의 대명(貸名) 관행이 무협시장의 황폐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저는 이름을 거의 빌려주지 않았어요. 80년대 중반 만화계로 옮기면서 2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대졸 초임이 30만원 정도였는데, 이름만 빌려줘도 몇 백을 받던 시절이었죠. 이름을 빌려주지 않았다고 저를 미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안 했던 게 아니라 못 했던 겁니다. 정말 괜찮은 글이 있으면 같이 해보고 싶기도 했는데…”
‘금강’의 이름을 빌리기 위해 출판사에서는 끊임없이 사람과 글을 보내왔다. 그런데 금강은 쉽게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이상 일정한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여겼다. 원고를 보고, 고치고 그러다 성에 안 차면 아예 작가를 붙들어놓고 가르쳤다. 돈이 안 되니 사람들이 줄줄이 떨어져나갔다.
- 무협작가들을 보면 여러 개의 필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강 외에 다른 필명도 있으신가요?
“필명을 여러 개 쓰는 이유는 하나죠. 글의 반응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바꾸는 겁니다. 자신이 바꾸고 싶어서 바꾸는 게 아니란 거죠. 책을 냈는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으면 그 필명을 버리고 다른 필명으로 새로운 책을 냅니다. 저는 데뷔 때부터 금강 하나를 썼고요. 사마달도 마찬가지고. 서효원만 두어 개 되는데, 그 친구는 이유가 달라요. 하도 책을 많이 내니까 사람들이 ‘한 사람이 이렇게 쓸 리가 없다. 틀림없이 대명이다’하고 의심을 하니까 출판사에서 다른 필명을 요구했죠. 유일무이한 케이스라고 봐야 합니다.”
- 4대천왕의 작품을 보면 각자 고유의 색깔이 뚜렷해 더욱 인기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4명 빼고는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특징을 보자면, 일단 ‘사마달류’가 가장 대중적인 스타일이었죠. 우리는 그걸 ‘동서남북류’라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조명하면서 편하게 풀어나가는 타입입니다. 작가가 쓰기도 쉽죠. 한 군데서 막히면 다른 사람을 등장시키면 되니까. 대신 정리를 제대로 안 해주면 흐트러지고 엉망이 됩니다.”
‘금강류’는 추종자가 없었다. 흉내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모든 스토리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변을 돌아가며 보여주는 ‘사마달류’와 달리 ‘금강류’는 오로지 주인공이 혼자서 주변을 탐사해 나가는 방식이다. 자칫 단조롭고 지루해지기 쉽고,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강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베끼기가 관행이었던 무협소설계에서도 금강의 작품은 베끼기 힘든 것으로 유명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좋지만, 한 단락만 떼어내면 어김없이 튀기 때문이었다.
“야설록은 당시로서는 문장이 굉장히 화려했죠. 서효원의 경우 계골체라 할 정도로 문장이 딱딱하면서 빠르게 사건을 진행시켰습니다. 딱 보면 ‘이건 서효원 작품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었죠.”
한 시대에 자기 색깔을 발현한 작가가 4명뿐이라는 현실은 무협시장의 홍복이자 재앙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재 무협, 판타지, 로맨스 등 대중문학작가들이 결성한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에서 초대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협회의 중점사업 중 하나가 인터넷을 통한 ‘불펌’을 방지하는 일이다. 작가가 힘을 기울여 쓴 작품을 ‘불펌’하는 일은 시장을 죽이는 최대의 원흉이다.
“작품들을 책으로 많이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살 수 있는 책은 사고, 적어도 빌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대충 쓴 것 같은 글이라도 작가들은 그 글을 쓰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인터넷으로 불법파일을 보게 되면 결국 좋은 작가들이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고, 대중문학의 미래는 없습니다.”
금강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집필해 온 ‘소림사’ 시리즈를 이달 내로 완간한 뒤 처음으로 ‘일반소설’에 손을 댈 계획이다. 가제를 ‘사막의 전설’로 정한 이 작품은 우리와 수메르의 역사를 엮어 종내에는 우리나라의 뿌리를 찾아가는 대 작업이 될 것이다. 자신의 대표작 ‘발해의 혼(2000)’에 이은 생애 최대의 야심작이다.
시계를 보니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어느새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무협소설 한 질을 다 읽고 난 기분이었다. 내공 한 갑자가 쑥 늘어난 것처럼 온 몸에 기운이 돌았다.
인터뷰를 마친 소감은 4대천왕은 결코 ‘전설’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설’이기를 거부하는 여전한 ‘현실’이었다.
금강은 현실의 중심에서 세상을 향해 벼린 검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금강?
-1956년 대구 출생
-1981년 ‘금검경혼’으로 데뷔
-대표작 : 금검경혼·뇌정경혼 등 경혼시리즈, 영웅천하, 발해의 혼, 대풍운연의, 절대지존 등
-대중문학사이트 문피아(구 고무림) 운영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 회장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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